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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탁효정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저널정보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남도문화연구 남도문화연구 제48호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7 - 4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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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순천 선암사의 역사적 유래를 살펴보고, 조선후기 선암사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고찰한 연구이다. 본고에서는 조선후기 선암사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선암사는 임진왜란 이후 총 세 번에 걸친 중창 불사를 진행하였고, 중창이 완료될 때마다 사찰을 현창하는 작업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둘째, 조선후기 선암사는 청허계 사찰로 유지되었다. 선암사는 침굉 현변이 주석한이래 청허계 소요파 사찰로 자리 잡는 듯 했으나 호암 약휴 이후 소요파의 법맥이 끊어지고, 이후에는 청허계 편양파 중에서도 환성문도들이 사찰 운영을 주도하였다. 조선말~근대 선암사의 3대 문파로 꼽히는 남암문도, 벽파문도, 철경문도는 모두 청허계 편양파중에서도 환성 지안의 법손들로 구성돼 있었다. 셋째, 조선후기 선암사에는 화엄학이 진작되고 수행선풍이 정립되는 풍토가 만연하였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된 데에는 침굉 현변의 공이 매우 컸다. 아울러 저명한 강주들이 연달아 배출되면서 선암사는 근대까지 호남을 대표하는 사찰로서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선암사 역대 선사들의 참선수행을 강조하는 풍토로 인해 선암사의 칠전선원은 조선의 4대 선원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넷째, 선암사는 정조대 왕자탄생 기도처로 역할한 공로를 인정받아 왕실원당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장경각으로 사용되는 축성전은 정조대에 지어진 원당 건물로 추정된다. 다섯째, 조선후기 선암사는 왕실과 감영의 종이 공급 사찰로 역할하였다. 선암사는지역(紙役)뿐만 아니라 남 ·북한산성의 의승번역, 전라감영에 닥나무를 마련해주는 잡역까지 담당하였고, 그로 인해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조선후기의 선암사는 전란과 화재, 잡역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사찰을 수호하고 수행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승려들의 노력으로 조선말까지 호남을 대표하는 사찰의 하나로 명맥을 이어나갔다. 현대에 들어 조계종-태고종 분규의 한복판에 자리잡게 되면서 많은 역경을 겪었지만 2022년 선암사의 소유권이 태고종에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서 선암사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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