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홍구 (단국대학교 한중관계연구소)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85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257 - 284 (2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단국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李中久家 5代 고문서를 중심으로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경주 斷煙會社의 조직 활동과 향촌 사회의 공동체 의식 등을 살펴보고 이전 연구 성과와 비교해 볼 때 새롭게 밝혀진 사항들을 정리한 것이다. 경주 지역에서 국채보상운동이 발기한 시기는 1907년 3월 18일(음력 2월 5일)이고, 단연회사가 설립된 시기는 1907년 3월 24일인데, 경주 지역의 의연금을 수금해서 서울 회사에 처음 납부하기 위해 출발한 시기는 1907년 9월 24일이다. 총 모금 금액은 1만 5500냥 쯤으로 6개월 만에 이룬 크나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역 임원의 동참에 의해 분실한 의연금을 다시 마련하였는데, 그 일이 일주일 만에 이루어낸 성과라는 점이다. 이는 단연회사의 일원으로서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이루어 낼 수 없는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경주 지역 내에서 국채 보상을 위한 의연금 모집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의연금 출연이 빠르게 진척된 강서면의 의연금을 서울로 보내 다른 면이 자극을 받게 해서 의연금 출연을 독려하였다. 그리고 의연금 모금에 있어서 어느 면은 거부 의사를 밝힌 곳도 있었다. 당시에 의연금을 독려하는 행태에 대해 비난의 의사를 보이며 義捐金의 ‘義’의 명칭에 걸맞게 자발적으로 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연금 운송을 위한 비용은 단연회 임원들이 부담하였고, 의연금의 수송을 맡은 인물은 재무를 맡은 任天植의 아들 任彙泰였다. 이중구는 단연회사를 설립하고 자신도 10원의 의연금을 내며 국채보상운동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였다. 향촌 사회의 구성원들을 응집하는 초석을 마련하였고 이에 따라 지역 주민들의 사회적인 책무를 일깨우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그리고 사돈인 金奎華와의 교류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의 국채보상운동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