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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만기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대동한문학회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제75권 제75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85 - 11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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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蒼廬 李鼎基(1759~1836)의 玉山九曲詩에 대한 연구이다. 옥산구곡은 16세기 경주의 학자인 晦齋 李彦迪의 도학 공간이었다. 이는 도산구곡이 퇴계의 유촉지로 경영된 것과 다름 아니다. 광뢰 이야순, 하계 이가순, 후계 이이순 등이 도산구곡시를 집중적으로 지어 선현인 퇴계의 산수자연에 대한 정신을 계승했듯이, 회재의 후손인 蒼廬 李鼎基, 南廬 李鼎儼, 琴坡 李鼎秉 등이 회재의 도학정신을 본받으려 하였다. 회재는 퇴계보다 10년 선배이고, 퇴계는 회재를 문묘에 배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퇴계의 선현추존사업은 후손들에게 영향이 미쳐 19세기 초 도산구곡을 경영하게 하였다. 그러나 퇴계가 존모했던 회재가 은거했던 경주 옥산에는 구곡경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회재의 후손인 창려 이정기가 퇴계의 후손 광뢰 이야순의 권유로 옥산구곡을 설정하기에 이른다. 蒼廬와 廣瀨는 구곡경영이 주자의 무이구곡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형적인 측면에서의 구곡보다는 비록 지형이 굽이를 형성하지 않아도 해당인물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면 구곡의 설정범주에 넣었다. 이는 그들 모두 구곡경영에 있어서 지형적인 측면보다 정신적인 측면을 더 중요시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못이 연못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그곳에 용이 살기 때문에 그 연못의 가치가 알려지듯이, 자연지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가 언제 그곳을 찾았느냐에 따라 해당 공간은 몇 배, 몇십 배 더 값어치를 갖는 것이다. 또한 창려 이정기가 회재 이언적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계술정신은 후손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목표이자 이상향이었다. 이야순의 발의와 권유에 의해 7명이 공동으로 답사하고 협의하여 옥산구곡을 정했다. 현재 알려진 구곡 중에 7명이 합의하여 정한 경우에는 매우 이례적이고 드문 사례이다. 옥산구곡을 정한 후, 趙基元(1752~1827)부터 河範運(1792~1858)까지 약 30년 사이에 옥산구곡이라는 하나의 구곡을 대상으로 15명이 구곡시를 지은 사례도 흔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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