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병수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51권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227 - 262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지금까지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의 이민사업에 대한 직간접적인 연구는 많이 축적되었지만, 이민사업의 결과 탄생한 이주농민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이는 이민사업이 조선농민의 대대적인 반발을 초래했기 때문이고, 사업으로 배출한 이주민의 수가 소기의 목표에 비해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동척이주민들은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 농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던 만큼 그들의 삶의 궤적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경북지역에 주목하여 동척농민들의 전반적인 분포와 사회적 활동들을 분석한다. 우선 그들은 단체이민을 권장하던 초기(1912~1915)에는 달성, 영천, 경산 등 대구 인근의 교통상의 요지에 주로 배치되었지만 단체이민이 폐지된 후기(1916~1921)에는 여러 지역에 산발적으로 소규모로 배치되었다. 둘째, 자작농 이민들 중 일부는 조선인들과 함께 조합을 결성하여 일본식 농법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농법 전이는 오직 제한적인 성과를 거두었을 뿐이었다. 우월하다고 간주된 일본식 농법은 조선의 기후와 환경에 맞지 않아서 효과가 미미하였고, 또한 동척이 이민 사업을 종료함에 따라 이주민들에 대한 보호와 감독이 사실상 없어지면서, 이주민들은 조선인들을 동화시키기보다는 자신들만의 조합을 만들어 이주민들의 복리와 구제에만 힘썼다. 마지막으로, 지주 이민 야마구치 겐조의 경우 동척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하기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동척 사업을 활용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동척 이민사업을 기반으로 상주에 정착한 후 그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성장하여 도회의원이 되는 등 지역유지가 되었다. 그러면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조선인과 연합하고 협력하기도 했지만, 총독부의 시책에 어긋나는 조선인 대표들과는 갈등을 겪기도 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