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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현영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한국고문서학회 古文書硏究 古文書硏究 제62권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55 - 7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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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7세기에서부터 18세기말에 이르는 반남박씨의 선조현양사업과 족보의 편찬, 선조 묘의 관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여러 논의를 소개하고 아울러 이를 통한 족적 결속 과정을 검토하였다. 17세기 후반 박세채가 처음 족보 편찬 작업을 시작하기 이전의 계보 기록들은 소종(小宗) 차원의 영성(零星)한 계보와 선대 사적 기록만 있었다. 같은 시기에 추진된 반남 선생과 야천 선생 현양 사업은 조정에서 적극 받아들여져서 추시(追諡), 치제(致祭), 향사(享祀)를 하게 되었다. 반남 선생의 의리에 대해서는 송시열과 박세당의 간접적인 논쟁이 있었다. 송시열은 존양(尊攘)의 의리가 있다고 보았고 박세당은 그러한 것보다는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했다는 의리의 측면에서 추시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7세기 후반 20여 년에 걸쳐서 편찬한 『반남박씨세보』 계해보가 박태보에 의하여 간행이 되고 『반양이선생유고(潘陽二先生遺稿)』와 『숭효록(崇孝錄)』도 간행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모두 박소(朴紹)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한 경화사족이 된 반남박씨들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1739년 본관지 반남 봉현 석천암의 소실과 다음 해인 1740년 석천암 중수(重修)는 반남박씨의 족적 인식을 좀 더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석천암 중수를 하는 과정에서, 지방관을 하는 서울 출신 반남박씨 경화사족들을 중심으로 출연을 하여 1년 만에 복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의 일족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대종 차원의 족적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 1766년에 간행된 병술보(丙戌譜), 1825년의 을유보(乙酉譜)가 호장을 시조로 하여 대종 차원의 족보를 확대 편찬할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경상도 합천 화양동에 있는 야천 선생의 묘소는 안의현에 현감으로 간 연암 박지원이 중심이 되어 원래의수준으로 제전(祭田)과 병사(丙舍)를 회복시키고 관리를 합천 관의 작청(作廳, 질청)에 맡겼다. 직접 묘 관리를 하지 못하고 그 근처 고을의 수령으로 와서야 참배를 하는 정도인 상황에서는 그러한 방식의 관리가 더합리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조선후기 박세당과 박세채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 선조 현양 사업의 전개 과정과 반남 봉현의 석천암중수, 합천 화양동 야천 묘소의 관리, 나아가 반남박씨 족보, 선현 사적의 간행 등에 대한 반남박씨 일족의활동을 통하여 조선후기의 족적 결속이 소종 중심에서 점차 대종으로 확대되어 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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