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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영춘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저널정보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호남고고학보 제74권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54 - 188 (35page)
DOI
https://doi.org/10.55473/JHAS.2023.7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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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북지역에서 조사된 제철 유구 및 유물을 검토하여 유적 내에서 행해진 제철 공정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시대별 특징을 정리하는데 목적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만경강 유역을 중심으로 단야 유적이 주로 확인되었다. 단야의 중심지는 완주 상운리와 수계리 집단 등이 활동했던 만경강 상류 유역으로, 주거지 내의 노지를 통해 단야가 이루어졌다. 3세기 중반∼4세기 전반 무렵, 성형단야를 통한 철기 생산 기술이 존재했으며, 4세기 후반∼5세기 전반에 이르러 괴련철의 품위를 높이거나 철정(鐵鋌)을 생산했던 정련단야 내지 단련단야 기술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제련과 관련된 유구는 아직 조사되지 않았으나, 과학적 분석 결과 남원 아막성에서 출토된 철재가 제련 과정에서 생성된 것으로 밝혀져 6∼7세기 무렵 아막성이 위치한 ‘시리봉’ 일대에서 제련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통일신라∼고려시대에는 주조와 관련된 유적이 조사되었다. 주변에서 관청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조사되었음을 감안하면 생산의 주체는 관(官)으로 추정된다. 생산품은 철솥(鐵鼎)으로 이는 당시의 난방과 취사 방법, 취사 용구의 보급 과정 등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괴련철을 생산하기 위한 상형로의 조성이 성행한다. 이러한 제련로는 전(前) 장벽에 배재구가 존재하고 후(後) 장벽에 소구경 송풍구가 뚫린 구조이다. 이는 일본의 상형로와 닮았으나 세부 구조는 다르다. 또한 제련로와 세트를 이루는 단야로에서 단조박편과 철재가 수습되어 유적 내에서 제련뿐만 아니라 괴련철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철정(鐵鋌) 등을 제작하기 위한 정련단야 또는 단련단야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제철유적의 운영 시기는 조선 후기(17∼19세기)로, 당시의 광업사적 연구 성과와 유적의 입지 등을 고려하면, 제철유적은 사적(私的) 생산과정에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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