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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남원진 (건국대학교)
저널정보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 제81호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335 - 37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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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50년대 후반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를 중심으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를 검토하고자 하는 한편, 제2차 조선작가대회체제의 ‘붕괴’에 대한 그 의미를 천착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필자가 명명한 ‘제2차 조선작가대회 체제’란 전국작가예술가대회 이후 조선작가동맹 제1차 전원회의에서 구성된 서기장제와 1인 주필체제에서, 제2차 조선작가대회 이후 논란이 많았던 서기장제가 폐지되고 3인의 부위원장제와 4인의 주필체제의 성립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미부여한 것인데, 이 체제는 북조선의 역사에서 제한적이지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논쟁적 문제제기가 가능했던 1956년 10월에서 1958년 12월까지 한 시기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1958년 12월 제3차 전원회의는 제2차 조선작가대회에서 폐지된 서기장 제도가 부활되고, 비상임 부위원장인 안막이나 윤두헌, 서만일 등이 해임되며 부위원장 제도가 복원된다. 이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편지와 김일성의 교시 실천을 위하여 낡은 부르주아 사상 잔재를 청산하고 당의 작가로 갱생할 것을 ‘경고’한 것에서 촉발되었는데, 제한적이지만 한때 자유로웠던 제2차 조선작가대회체제의 ‘붕괴’를 상징하는 중요한 결절지점이다. 또한 이 전원회의는 김일성의 1958년 10월 연설에서 부르주아 사상 잔재의 청산이라고 말해진 ‘경고’에 따라 제2차 조선작가대회 이후 사회주의 미학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서 억압하면서 당(黨) 문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는 중요한 좌표가 된다. 특히 제2차 전원회의에서 홍순철에 대한 비판이 8월 전원회의 사건, 즉 정치적 반종파투쟁과 관련된 반대파의 목소리를 사장한 것인데 반해, 제3차 전원회의 이후 안막이나 윤두헌, 서만일 등에 대한 비판은 ‘당적 지도’에 반대하는 조선작가동맹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고 배제한 것이다. 이는 제2차 전원회의와의 결정적 차이인데, 이는 하나의 목소리를 강요하는 김일성 계열 중심의 단일한 지도체제를 확립하는 길의 상징적 이정표가 된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인민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한 안막 등의 노돈만은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조선문학사는 다시 기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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