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성수 (불교신문)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102집
발행연도
2023.7
수록면
315 - 339 (25page)
DOI
10.18587/bh.2023.7.102.31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의 격동기에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후 현지에서 활동한 박노영의 생애와 사상을 심도 있게 밝혀보고자 한 것이다.
20세기 전반, 세계열강이 식민지를 개척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또한 암운(暗雲)이 짙게 드리워졌다. 이때 한반도 남쪽의 조그만 섬에서 태어난 박노영은 현실에 낙담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다. 경남 고성 옥천사에서 출가하여 신학문을 익혔으며, 통도사 지방학림을 거쳐 경성 중앙학교에 진학하여 근대교육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3·1운동이 미완의 혁명에 그친 후 백초월 등과 비밀독립운동단체인 혁신단(革新團)에 참여해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간하는 등 제2 독립운동에 나서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국내 여건이 여의치 않아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더욱 넓은 세계를 찾아 나섰으니, 그곳이 미국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공부하여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비록 고국을 떠나 있었지만,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조선의 변화를 촉구하고, 조선불교의 개혁을 염원했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 남미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다수의 저서를 발간하는 등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알리고 인류의 평화 구현을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 박노영에 관한 연구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미진한 상황이다. 1945년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구하 선사를 비롯한 통도사의 후원을 받아 신학문을 익히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박노영은 언제나 조국과 불교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의 흔적을 찾는 일은 우리의 숙제이다. 특히 독립운동에 기여한 업적이 있음에도 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는데, 이른 시일 내에 포상받도록 해야 한다. 격동의 시대에 출가해 독립운동에 참여한 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조선의 현실을 세계 곳곳에 알리고자 노력한 그는 시대를 앞선 선각자였다.

목차

한글요약
Ⅰ. 글에 들어가며
Ⅱ. 박노영의 생애
Ⅲ. 미국 유학과 활동
Ⅳ. 조국관과 불교관
Ⅴ. 글을 마무리하며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