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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경호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2집
발행연도
2022.4
수록면
415 - 448 (34page)
DOI
10.52271/PKHS.2022.04.12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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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정한경의 생애와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그의 재미독립운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평안남도 순천출생인 정한경은 박용만의 숙부인 박희병(이후 박장현으로 개명)의 영향을 받아 도미하여, 1905년 미국에 도착하였고, 중부지역인 네브래스카주에서 스쿨보이생활을 했다. 그는 박용만이 세운 한인소년병학교를 다니며, 미국 정규교육을 수료하였고, 네브래스카사범학교와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특히 이 시기에 토론으로 네브래스카 커니시에서 대표로 선출될 만큼 손꼽히는 학생이었다. 그러한 역량을 인정받아 네브래스카대학 교수들은 그를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제학과에 펠로우쉽으로 추천하여 장학금을 받고 가게 되었으나, 실제로 워싱턴 아메리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그가 이 시기 워싱턴과 뉴욕에서 한국의 사정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독립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토론으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기고 활동도 이어갔다. 1913년 「일본에서 한국의 통치」 투고 시작으로 일본의 중국 및 한국 침략과 통치에 대한 글들을 계속 써가며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해 비판하였다. 흔히 그는 위임통치청원서 작성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뿐만 아니라 그는 1918년 하반기부터 미 중·서부지역을 다니면서 강연과 연설, 그리고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글을 기고하면서 일제의 참상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간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에 참여하였고, 1918년 12월 1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제2차 약소국동맹회에 한국측 대표로 참여하였다.
1919년 5월부터는 대한인국민회에서 자체적으로 영역한 3·1독립선언서를 이대위와 상의하며 수정했고(실제로 반영되지는 않음), 미국 중부지역에서 서부 지역에서 주로 연설과 강연, 그리고 외국인사들과 만나며 한국 독립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 한국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윌리엄 그리피스나 비숍 웰치와도 빈번하게 접촉하였다.
1921년 6월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미국 대통령 워렌 하딩앞에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The Case of Korea』의 내용을 연설하였고, 박사학위 취득 시점을 전후하여 뉴욕에서 여러번 강연했다. 1921년 6월 말부터 8월까지는 하와이세계기자대회에 방문하여 한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자들에게 일제 식민 지배의 참상을 알렸다. 1921년 11월 워싱턴회의에 참석하여 한국독립에 대한 큰 기대를 걸었으나, 성과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속적으로 강연과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미주에서의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도미 배경과 중부에서의 유학 생활
Ⅲ. 1918년 하반기 이후 저술과 중·서부지역에서의 활동
Ⅳ. 1920년 하와이·동부지역에서의 활동과 박사학위 취득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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