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중소연구 중소연구 제41권 제2호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97 - 138 (4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5)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중국공산당 당치의 기원이 1927년 [8·7회의]부터 1934년 10월까지 공산당의 改造 노선 갈등 및 왕밍이 주도한 중공 중앙의 권력화와 대중 기반 숙반운동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1927년 4월 12일 이후부터 1929년 중반까지 중공 중앙은 그야말로 허수아비에 불과했지만, 대략 1934년 1월에는 강력한 당치를 확립했다. 1927년 8월 이후 마오쩌둥 등 지역 지도자들은 `당의 민주화` 기치 하에 아래로부터의 改造를 실천하며 기층에서 군사적 세력화와 대중적 지지 기반을 확대한 반면, 상급 조직 및 중앙의 명령에 대해서는 `반혁명` 딱지를 붙이며 반발했다. 당시 리리싼이 주도하던 당 중앙은 `당의 위계화`를 내세워 지역 지도자들에 대해 `저항`했지만 자력으로 통제할 역량이 없었기에 결국 1929년 중반 코민테른을 끌어들인 후 형식적 당치를 확립할 수 있었다. 1931년 이후 왕밍 지도부는 특수 경찰기구를 설립·운영하고 또 대중 기반 숙반운동까지 전개하며 당 내외에서 `비-왕밍 세력`을 제거하고 실질적 당치를 확립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층 당 조직 및 민간에서는 무분별한 폭력, 고문, 살상 등이 발생했지만, 왕밍 지도부는 더욱 강력하게 위로부터의 改造를 관철했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시기 왕밍 지도부의 숙반운동은 결과적으로 볼 때 마오쩌둥을 `진정한 수혜자`로 만들어 주었다. 즉 옌안 시기 마오쩌둥의 `당의 민주화` 및 `옌안정풍`은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시기 왕밍 지도부에 의한 `당의 위계화`와 `피의 숙청`토대 위에서만 신화로 재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2-2023-309-001837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