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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기섭 (남서울대학교)
저널정보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퇴계학논총 퇴계학논총 제25호
발행연도
2015.6
수록면
163 - 18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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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중국대륙에 접해있는 반도국가로 삼면이 바다이다. 그래서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말까지는 중국으로 주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의 역사가 태동하면서부터 중국과의 관계가 밀접하여 중화를 받아들이는 역사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우리에 비해 중국의 역사가 앞서 있음은 물론 문명에 있어서도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조선 때에 중화가 도입되어 삼국시대, 고려, 조선으로 내려오면서 儒道가 우리 삶의 잣대가 되었고, 중화제도가 우리 생활에 중심에 있었다. 이에 대하여 의암 유인석(1842∼1915)은 그의 시 「華東吟」 25수와 『毅菴集』 속의 「宇宙問答」, 「道冒篇」 등에서 언급하고 있다. 시 「華東吟」 25 중 중국과 우리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시 11수와 이 시의 내용과 밀접한 문장을 「宇宙問答」, 「道冒篇」에서 발췌하여 華東의 관계를 相補하였는데,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암은 중국과 우리나라를 ‘宗⋅支家’와 ‘人種一’의 관계로 인식하고 이 관계를 춘추의리의 명분에서 찾고 있다. 나아가 당시 이를 실천하는 것이 ‘尊明’이고 명나라가 멸망했음에도 中華의 명맥을 보전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小中華정신이다. 따라서 명의 국권을 회복하여 대중화정신으로 세계가 ‘大一統’이 될 때, 태평성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둘째, 역사로 본 중화와 소중화는 중국과 조선이 主從이나 命伏의 관계가 아닌 兄弟 또는 父子의 관계임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관계이기 때문에 명나라가 망한 후에도 그 의리를 지켜 崇明하였고, 華脈이 조선에서 보전됨으로써 이곳이 곧 중화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으로 본다면 중국과 우리의 관계에서 그가 말하는 ‘小中華’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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