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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재완 (국립경주박물관)
저널정보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동악미술사학 제17호
발행연도
2015.6
수록면
651 - 673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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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에 대한 연구 경향이 樣式史에 치중되어 있어, 그 동안 함께 논의되지 못했던 부분들을 포함시켜 고찰함으로써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의 숨겨진 면모를 찾고자 한 것이다.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의 초층 탑신석을 면밀히 살펴보면, 기존에 모각되어 있던 浮彫像이 제거된 흔적과 浮彫像이 제거된 다음 釘穴이 뚫린 양상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은 塔身部 전체에 금속판을 덮어 표면을 莊嚴한 때가 탑 건립 시점이 아니라 이후 시점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으로서, 建塔 시점에 表面莊嚴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본 기존의 연구 및 언급들과는 背馳되는 현상이었다. 이 점은 기존의 연구와 언급들을 재확인해 보고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에 따라 造塔記에 대한 信賴性 檢討, 造塔記를 새긴 時點과 背景 推定, 表面莊嚴 時期에 대한 檢討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였다. 먼저 명문에 기록되어 있는 건립 연대인 天寶 17년(758)이 탑의 樣式과 맞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은 基壇部 배열 방식은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의 樣式的 계보를 이었고, 비례는 석가탑과 유사하여 758년에 제작된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造塔記를 새긴 시점과 배경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造塔記를 새긴 시점은 건탑 시점이 아니라 元聖王代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뒤늦게 새긴 造塔記는 元聖王 외척들의 위상 변화에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758년 照文皇太后와 그녀의 형제들이 갈항사에 탑을 세우고 불상을 만드는 등의 重創 佛事를 진행할 당시에는 세력이 미약하여 그들의 치적을 밝힐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元聖王의 재위 시에 진행한 重創 佛事에서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으므로 과거의 치적까지 담아 뒤늦게 造塔記를 새긴 것이라는 주보돈의 주장은 매우 합당한 추론임을 알 수 있었다. 결국 元聖王代에 새긴 造塔記는 외척 주도의 대규모 重創 佛事가 갈항사에 진행되는 과정에서 쓰여진 기록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토대로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과 樣式的으로 친연성이 있는 高仙寺址 三層石塔, (傳)仁容寺址 東·西 三層石塔의 표면장엄 발전 양상을 고찰해 본 결과, 이 탑의 표면장엄 시점은 자금, 인력, 시간 등이 모두 충당될 수 있었던 대규모 重創 佛事 때 즉 造塔記가 새겨진 8세기 후반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은 758년 元聖王의 어머니와 그녀의 형제들에 의해 탑이 건립될 당시에는 초층 탑신석에 浮彫像이 새겨진 보편적인 일반형석탑이었으나, 元聖王代에 重創 佛事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계획된 意匠에 따라 탑에 모각되었던 浮彫像은 제거되었고, 탑의 표면은 금속판으로 화려하게 장엄되었으며, 造塔記도 뒤늦게 새겨지게 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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