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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심재연 (한림대학교 한림고고학연구소)
저널정보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학연구 인문학연구 제48호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173 - 203 (31page)
DOI
http://dx.doi.org/10.35559/TJOH.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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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시대 강원 영동지방에 분포하는 마을의 자체적인 철기 제작 증거는 기원후 2세기경부터 확인된다. 그리고 중심 마을은 동해 송정동유적, 강릉 병산동유적이다. 이후, 영동지방은 4세기 중·후반경부터 신라화가 진행되었지만, 물질문화의 변동은 급격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주거 형태는 전통적인 주거 형태와 방형 신라 주거가 공존하였다. 철기 제작 기술도 강릉 병산동유적에서 (반)환원괴를 정련하여 철 소재와 철기를 만드는 정련단야와 단련단야 공정이 지속되고 있어 획기적인 변화가 진행되었다고 볼 수없다. 그리고 선철은 주조용해공정의 존재를 논의할 수도 있지만, 제철 복원 실험 결과, 괴련철 생산 체계에서 우연히 생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철기시대부터 병산동 마을은 강릉지역 철기 생산 중심지였는데 신라진출 이후에도한시적으로 지속되었다. 병산동 마을에 거주하던 단야 장인이 초당·강문동, 송정동, 안인리 마을을 순회하면서 철기 제작 및 수리를 담당하였다. 이후, 신라화에 따라 조성된고분 중에 일상용 철기를 제작하는 단야 장인의 존재가 확인된다. 이처럼 삼국시대 강릉지역은 신라화 이후에도 철기 제작에 필요한 철 소재 수요는 급격하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환원괴의 반입은 유지되었다. 왜냐하면 자체적으로철 생산을 하는 비용 보다, 외부에서 반입하는 것이 부가가치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철 생산 장인의 분묘가 확인되지 않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강릉지역은 신라의 영역화에도 불구하고 철기 제작 기술은 철기시대 전통이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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