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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동인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저널정보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율곡학연구 율곡학연구 제35권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279 - 320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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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유흠(劉歆)이 고문경학(古文經學)을 창립하게 되는 배경을 탐색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다. 어떤 뛰어난 사상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정치적 배경과 가계의 뒷받침 없이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서한 말(西漢 末)처럼 금문경학(今文經學)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유흠이 고문경학을 창립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 그의 아버지 ‘유향의 유가철학과 그 정치적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유향이 금문경학자요 금문경전의 하나인 『춘추곡량전』을 전수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타파의 소의경전인 『춘추공양전』이나 『춘추좌씨전』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또 금문경학의 특징인 가법(家法)과 사법(師法)에 얽매이지 않으며, 또 심지어 제자백가의 사상까지도 육경의 지류(支流)와 말예(末裔: 보조자료)라고 보면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이유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기울어져 가는 서한 말의 정세를 바로잡고 유한정권(劉漢政權)의 장치구안(長治久安)을 도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한정권의 종친이었던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학파나 가법과 사법 같은 학파적 정체성이 아니라 바로 유한정권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환관과 외척에게 휘둘리는 황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그는 기존의 음양재이사상을 재해석하여 그 타깃을 황제가 아니라 당시 정권을 틀어쥐고 전횡을 일삼던 환관과 외척에게 맞추었다. 원래 황제의 독재를 막고자 설정된 이론을 환관과 외척 등 간신들의 준동을 막는데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위민(爲民)과 인귀(人貴) 중심의 민본사상을 통해, 유향은 이전의 누구보다도 군주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통치에 있어서 오직 임금과 백성이라는 양자구도를 조성했다. 즉 그렇게 함으로 환관이나 외척들이 백성들과 관계할 수 있는 입지 자체를 무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야 군주의 백성들에 대한 위상을 제고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유향은 당시의 주된 경향이었던 학파나 사법 및 가법에 굳이 얽매이지 않고 금·고문은 물론이고 제자백가도 정치적 필요에 따라 모두 활용했다. 이것은 당시 학파나 학맥을 중시하는 금문학자나 유학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유향은 그것에 개의치 않은 것이다. 한(漢) 황실의 종친이었던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학파적 지향이나 원리 및 신념을 지키는 것보다 한 황실의 안정과 장치구안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의 이러한 점들이 그의 아들 유흠이 고문경학을 창설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유가사상은 강한 정치적 특징을 지닌 것이라 평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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