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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맹성렬 (우석대학교)
저널정보
인문사회과학기술융합학회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 제7권 제10호
발행연도
2017.10
수록면
955 - 964 (10page)
DOI
http://dx.doi.org/10.14257/ajmahs.201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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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최근에 많이 바뀌고 있다. 1970년대까지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천문대라고 보기에는 첨성대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많은 이설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첨성대에 대하여 제기된 가설들 중에서 천문대설, 지점 정렬설, 그리고, 우물설이 나름대로 제일 설득력이 있다. 천문대설은 삼국유사에 ‘별을 바라보는 곳(瞻星臺)’이라 적시되어 있기 때문에, 지점 정렬설은 첨성대가 선덕여왕릉과 함께 동지 일출선에 방위 정렬되어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우물설은 그 형태가 우물처럼 생겼다는 점 때문에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이 세 가지 부정하기 힘든 사실들을 조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왔으나 크게 설득력이 없었다. 이는 첨성대 기원을 한반도에 국한된 시야로 바라보려 했기 때문이며 세계사 속에서 바라보면 그 해법을 찾을 실마리가 보인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천문학자들은 천문 관측용 우물에 대해 수차례 언급했으며, 아랍권에 실제로 그런 천문관측 시설에 대한 증거가 존재한다. 당시 우물탑 형태의 천문 관측소는 주 천문대에 부속되어 야간 이외에도 해지기 직전이나 해가 뜬 직후에 별을 관측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런 관점에서보면 첨성대는 서구에서 여명에 별을 관측하는 우물탑으로 건축된 건축물이 변형된 형태로 볼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언제 어떤 경로로 우물에서 별을 관측하던 서구의 방법이 신라 땅까지 전달된 것일까? 첨성대가 건축되던 7세기 경엔 이전에 그리스·로마에서 직접 신라로 문물이 유입되던 초원 루트가 폐쇄되어 있었다. 또, 아랍권이 지중해를 막 점령하던 시기라 아랍인들이 지중해 문물을 신라까지 전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런 여건은 9세기 이후에나 가능했다. 천문학을 포함한 그리스 문물이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의 인도 정벌 때 인도로 전파되었고, 6-7세기의 인도 천문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당시 신라 왕조는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종교적 맥락에서 천체 관측용 우물이란 지식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첨성대가 지점 정렬되어있다는 사실과 결부시켜 생각할 때 첨성대는 동지 일출 때 경주 상공에 떠있는 별을 담을 목적으로 건축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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