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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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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화선 (선문대학교) 구사회 (선문대학교)
저널정보
인문사회예술융합학회 문화와융합 문화와융합 제38권 제4호(통권 제42집)
발행연도
2016.8
수록면
115 - 14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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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동아시아의 해시계와 전통 천문과학을 살펴보고, 이어서 조선 세종시대의 <앙부일구>와 원나라의 <앙의>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이 둘 사이의 특징과 문화교류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교류사의 일단을 파악해보고 그에 대한 의미를 탐색하는데 있다.
주요 연구대상은 동아시아의 해시계로서, 해시계는 기원전 1500년경에 이집트에 존재했던 것이 확인된다. 중국에서도 태양의 그림자를 재는 규표인 노몬(Gnomon)의 존재가 기원전 7세기 무렵에 있었으며 수준 높은 천문의기가 주나라 이전 시기에 있던 것이 문헌으로 확인된다. 이집트의 천문학은 일찍이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이슬람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원대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중국의 천문과학과 결합하여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17세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의 우수한 역법을 중국에 전하였고, 한편으로 중국의 적도식 해시계를 유럽으로 가져갔다. 여기에서 동양과 서양의 과학이 쌍방향 교류를 하고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원이 쇠퇴한 이후에 천문학은 조선으로 전해져서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하였다. 조선 세종시대의 천문 과학은 태종의 과학정책을 계승하면서 답습이 아닌, 창의적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혼천의와 기계 시계가 결합되어 혼천시계가 발명되었는데, 이것은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기술이 결합되어 조화를 이룬 새로운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세종 16년(1434)에 공개된 <앙부일구>도 원나라 곽수경이 만든 <앙의>를 참고한 것이지, 실상은 매우 다른 창조적인 해시계로 여겨진다. 이것은 제왕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편리함과 유용성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이들 동아시아의 전통 천문과학은‘ 인간 중심’ 내지‘ 인간본위’의 실용적 사고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동아시아 천문과학의 중심 발명품인 이들 해시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문화 교류의 특징적 면모가 드러난다. 그것은 과학문명이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해오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행적으로 확장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목차

1. 머리말
2. 동아시아의 해시계와 전통 천문과학
3. 조선의 <앙부일구(仰釜日晷)>와 원의 <앙의(仰儀)> 비교
4. 해시계를 통해 본 동아시아의 문화교류
5. 맺음말
참고문헌
[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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