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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은경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저널정보
동양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 동양미술사학 제13권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121 - 149 (29page)
DOI
10.22978/aarth.202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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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채는 태생부터가 유럽시장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생산된 자기이지만, 18세기 후반 이후 이슬람 세계로의 소비정황이 확인되고, 19세기에 이르면 본격적인 이슬람 시장으로의 수출이 이루어져 광채자기의 생산과 수출과정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8세기의 대표적 예로 무굴제국에 유입된 광채 식기세트가 있으나 소량에 불과하다. 이는 아마도 당시 동인도회사가 중서무역에 절대적 우위를 선점하는 가운데, 영국 동인도회사령의 무굴제국에서 아시아 간 역내무역 형태로 소량 주문되어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아시아 역내무역의 주요 축이었던 인도 무굴제국과 중국과의 소규모 거래에 의한 것으로, 수출된 광채자기의 장식이 유럽 도기에서 주로 사용된 ‘백색 위의 백색(Bianco Sopra Bianco)’ 기법이 상용된 것으로 보아 특정 계층을 위한 소량의 주문품으로 보인다. 다만 이때 광주의 요업계 역시 동인도회사를 통한 유럽으로의 대규모의 수출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는 핵심 시장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840년대 광동의 일항 체제가 종식되면서, 광채의 수출에도 드디어 변화가 감지된다. 19세기의 중국 요업계는 주요 고객을 잃으면서 새로운 시장으로의 개척이 필요했고, 광채 생산업계는 때마침 1840년대 난징조약에 의한 對중국의 자유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ㆍ이집트ㆍ오스만 제국 등 이슬람 세계에 의한 직접적 주문과 함께 이슬람 세계로의 본격적 수출이 이루어 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슬람 세계로 적지 않은 수량이 수출되면서, 카자르 왕조에서 생산된 채회도기의 다수가 광채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도 하였다. 즉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의 광채 수입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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