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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성식 (영산대학교)
저널정보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 동양문화연구 동양문화연구 제35권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7 - 3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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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16세기에 활동한 소재 노수신의 생애와 학문관을 탐구하는 데 있다. 노수신이 활동한 16세기는 성리학자들이 크게 명성을 떨치며 활동한 시대였다. 이들과 달리 노수신은 귀양살이를 20년 동안이나 하며 사회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다는 측면과 유배에서 돌아온 후 정계 복귀와 관직 승진이 특이했다는 점에서도 이채로운 모습을 보였다. 젊은 시절 노수신은 이연경의 문하생이 되어 유교의 기본 경전인 『소학』을 전수받았다. 『소학』은 유교 윤리의 실천 이념으로서 이를 암송했다는 것은 자기관리에 철저했음을 뜻한다. 노수신은 『소학』 학습에도 철저했지만, 유교의 기본텍스트 가운데 하나인 『논어』에 대해서도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노수신의 학문은 유배 생활을 가기 전에는 매우 정밀하고 해박하여 유림의 촉망을 받았지만, 20년간 유배 생활을 지내는 동안 다양한 학문적 견해를 보이자 이황이 우려할 정도였다. 당시 주자학풍이 주류를 이루며 선도하는 양상에서 노수신은 주자의 학설에 이견을 제시할 정도로 학문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노수신 학문관의 특징은 공자와 주자로 이어지는 유학의 근본정신을 기반으로 하면서 주자학 일변이 아닌 육왕학이나 선학에 대해서도 개방된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만하다. 16세기 절대시 된 주자학의 시대 조류 속에서 노수신은 학문의 일정한 다양성을 모색하였고, 이러한 다양성의 추구는 학문 간 소통을 도모하였다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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