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가희 (전주대학교)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63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123 - 150 (2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송광유 고변사건은 국왕 인조의 재위 기간 초반에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628년(인조 6) 12월 17일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송광유가 일부 호남 선비들의 역모를 고발하면서 시작되었다. 송광유로 인해 총 31명이 연루되어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송광유가 허위로 고발한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결국 무고(誣告) 사건으로 판결났다. 본 논문에서는 첫째, 조선시대 17세기 초반을 살았던 송광유라는 인물에 대해 탐색을 했다. 둘째, 송광유가 일으킨 무고 사건을 처리하는 국왕과 신하들의 입장 차이를 검토하는데 주목했다. 먼저 송광유의 고변 동기 이면에는 좋아하는 관비 후양춘을 속량(贖良)하고 싶었던 송광유의 욕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욕심은 공신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연결되었다. 즉 송광유는 공을 세우는 수단으로 고변을 이용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송광유가 거짓으로 고발한 정황이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러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국왕과 신하 사이에서 송광유 처벌에 대한 입장 차이가 극명히 대립한다. 최고 권력자인 국왕 인조의 입장에서는 송광유의 고발 내용에 어느 정도 사실 관계가 있음이 중요했다. 반면 신하들 은 송광유의 허위 사실 제보 측면에 집중했다. 그러나 송광유 처벌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국왕 인조에게 있었다. 이런 점에서 국왕 인조가 송광유 처벌을 반대한 근원적 이유를 탐구함으로써 허위 사실 고발자에 대한 인조의 생각의 일면을 분석해보고자 했다. 이는 인조 재위 기간 내내 벌어지는 역모 사건에 대해, 인조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건을 대처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