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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만기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79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295 - 32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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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醴泉 仙夢臺의 장소성과 그 의미에 대한 연구이다. 선몽대는 遇巖 李閱道가 그의 나이 26세 때인 1563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열도는 퇴계 이황의 從孫子로 선몽대 건립 후에 퇴계가 직접 편액을 써 줄 정도로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이열도는 유년시절부터 퇴계의 조카인 遠巖 李?와 퇴계의 손자인 李宗道 그리고 松巖 權好文 등과 함께 퇴계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퇴계가 지은 칠언절구 한 수는 선몽대를 마음을 수양하고 학문을 탐구하는 일반적인 정자와는 다른 측면이 있고, 遊賞의 이미지와도 그 의미에 있어서 차별성을 지니게 하였다. 그리하여 명현석학과 시인묵객들로 하여금 선몽대를 찾게끔 종용하였고, 그 결과 차운시라는 결과물이 창작되었다. 선몽대는 45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동원 정호선 등의 홍유석학과 송암 권호문, 청대 권상일 등 시인묵객들의 시적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한음의 후손, 동원의 후손, 그리고 청음의 후손은 이곳에 들러 선조의 시판을 보며 조상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으로 재인식함으로 인해 선몽대의 장소성과 그 의미가 더욱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몽대가 유상처의 기능을 넘어 추모의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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