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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소현숙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저널정보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동악미술사학 제30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89 - 114 (26page)
DOI
https://doi.org/10.17300/dah.202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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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측천과 현종의 집권기인 7세기 후반과 8세기 전반은 당대 최고의 전성기였다. 중국 내에서는 통일적인 당대 불교문화가 수립되었으며, 동아시아적으로는 이른바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이 형성되었다. 본 연구는 이 시기 통일적인 불교문화 형성의 배후에 황권에 의한 통일상의 복제와 반포가 존재했으며, 이것이 ‘諸州官寺制’라는 제도와 결합함으로써 매우 신속한 확산이 이루어졌음을고찰하였다. 무측천은 미륵상과 관음상을, 현종은 자신의 상호를 한 진용의 등신불상과 비사문천왕상을전국적으로 반포했다. 무측천과 현종에 의해 이루어진 통일적인 형식의 불상은 각각 황권의 통치이념을 대표하거나, 혹은 ‘대중의 구제’라는 황제의 전륜성왕적 통치를 상징하였다. 다시 말해 황권에 의한 통일상의 복제와 반포는 왕즉불 사상의 시현이자, 불교와 대중에 대한 관리정책의 측면을 갖고 있었다. 통일적인 형식의 불상은 무측천과 현종에 의해 장안과 낙양의 兩京, 그리고 300개가 넘는 전국 각 주에 설립된 官寺 大雲寺와 開元寺에 각각 안치되었다. 전국적인 유포는 일반적으로 2차원적인 그림과 繡像 등의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제주 官署에서는 이를 토대로 3차원의 금동상이나 소상으로 제작하여 해당 지역 관사에 반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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