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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하정승 (한림대학교)
저널정보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연구 동양한문학연구 제47권
발행연도
2017.6
수록면
121 - 15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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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만은 주로 17세기 중·후반에서 18세기 초엽까지 활동했던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특히 숙종조에서는 영의정을 지냈고, 소론의 영수로서 정계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약천은 외교, 행정, 국방 등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고, 지금까지 약천에 대한 연구도 정치적·역사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학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약천은 상당한 분량의 시문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그 수준 또한 주목할만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보다 심도있는 약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문학적인 측면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리라 본다. 그의 문집인 『약천집』에는 276수의 시가 실려 있어 문인으로서의 남구만을 살펴보는 데에 좋은 자료가 된다. 본고에서는 만시를 중심으로 남구만 시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그는 약 54수의 만시를 남겼는데, 문집에 실린 시의 전체적인 분량을 고려해 볼 때 이는 매우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약천이 이토록 많은 만시를 남긴 것은 그의 정치적·사회적 신분이나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29세에 환로에 올라 83세로 죽을 때까지 50여년의 세월을 정계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으니 수많은 인사들과 교유를 나눴을 것이다. 따라서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의 죽음 앞에서 때로는 자발적으로, 또 때로는 청탁에 의해 만시를 짓게 되는 경우가 많았음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약천이 만시를 이처럼 많이 짓게 된 것은 조선후기, 특히 만시의 창작이 가장 비약적으로 늘어났던 16세기에서 17세기의 문학적 배경에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그가 만시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교유관계는 물론 인생관과 가치관 같은 약천의 사상적 편린까지도 살펴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약천이 만시로 남긴 38명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왕과 왕비, 사대부가의 부인들도 있지만 주류를 이루는 것은 역시 고위관직을 역임한 관료들이다. 이는 평생을 중앙정계의 핵심인물로 살아왔던 남구만의 정치적 입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평소 남구만과 교유관계가 깊었던 인물들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또한 동료의 모친이나 부인, 제자의 죽음을 애도한 시도 보이는데, 이들을 다룬 시에서는 개인적인 감회, 즉 망자에 대한 애도와 안타까운 감정이 다른 시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표현 기법적인 특징을 보면 망자의 정치적·학문적 업적을 기술하고 기질이나 성격, 또는 인간적인 풍모 등을 언급한다. 망자의 부모형제, 자녀 중에 특이한 사항이 있으면 함께 기술하며, 특히 시인과의 개인적 추억이나 일화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약천의 만시는 매우 서정적이고 감성에 호소하는 시들도 있고, 반면에 마치 묘지명이나 행장 등에서 기술될법한 내용들이 주를 이뤄 실용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시들도 있다. 특히 서정적인 만시의 경우, 대체로 율시일 때는 마지막 尾聯에, 절구일 때는 結句에 시인의 감정을 담은 寫景 위주의 비유적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약천 만시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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