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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영호 (인하대학교)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44호
발행연도
2017.9
수록면
261 - 29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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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동학군의 해주성(海州城) 점령사건은 전라도 동학군의 전주성 점령 못지않게 주목해야할 사건이다. 조선정부는 황해도 동학군 지도자인 성재식(成載植)과 전라도 동학군 지도자 김개남(金介男)을 체포하여 서울에서 효수(梟首)한 뒤 김개남의 수급(首級)은 양호(兩湖)지방에, 성재식의 수급은 해서(海西)지방에 조리돌리게 했다. 동학농민전쟁의 지도자로서 김개남이 차지하는 위상을 성재식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양자를 동급으로 취급한 점에서 조선정부가 황해도 동학군의 봉기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동학농민전쟁 연구에서 해주성 점령사건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 실체가 충분히 밝혀지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해 설치된 양호도순무영(兩湖都巡撫營)의 일지인 『갑오군정실기(甲午軍政實記)』가 발굴됨으로써 해주성 점령사건은 분명해지게 되었다. 그동안 해주성 점령은 1894년 양력 11월 3일(음력 10월 6일)부터 12월 3일(11월 7일)의 한 달간으로 애매하게 처리되어 왔다. 그런데 『갑오군정실기』의 기록에 의해 11월 22일(10월 25일) 동학군이 해주성에 들어가 11월 30일(11월 4일)까지 9일간 점령한 것으로 확정할 수 있다. 또한 해주성 점령 전후 동학군의 세력 확장이나, 12월 23일(11월 27일) 동학군이 세력을 총 결집하여 재차 해주성 공격에 나선 과정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황해도 동학군의 활동은 남부지방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첫째 동학군에 참가한 계층이 상당히 다양하다. 본 연구에서 ‘동학농민군’이라 하지 않고 ‘동학군’이라 표현한 이유다. 물론 수적으로는 농민층이 주류를 이루었을 것이다. 둘째 임종현(林宗鉉)이 지휘한 황해도 동학군은 각종 행정문서를 소각하고 스스로 감사와 수령을 임명하는 등 ‘모반’의 흉내를 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황해도 동학군의 봉기는 변란적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셋째 남부지방의 동학농민전쟁이 1895년 초에 종결된 데 비해 황해도에서는 1895년 여름까지 저항이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동학농민전쟁의 전국성을 고려한다면 그 종결시기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넷째 황해도 동학군의 활동은 이후 군(郡) 단위의 농민항쟁이나 계획적인 변란 등의 민중운동과 연관되는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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