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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배현준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20호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37 - 64 (28page)
DOI
10.52557/tpsh.2021.1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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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5세기~기원전 4세기대 후기 십이대영자문화에서는 연문화 요소가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이는 후기 십이대영자문화와 연산이남의 연문화 사이에 모종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의 후기 십이대영자문화 집단과 연문화 집단 간 단일한 네트워크는 아니었다. 남동구-동대장자유형은 연산이남 연문화의 중심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도 동대장자유형은 후기 십이대영자문화 분포권에서 연산이남 연문화와 제일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양 지역 간 문화교류도 왕성할 수 있었겠지만, 한편으로 연나라 입장에서는 이 지역이 가장 먼저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네트워크는 군사적?상업적 성격을 띠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대자 유적군은 연산이남 연문화의 2차 중심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원대자 유적군은 후기 십이대영자문화권 내에서의 입지가 그다지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여러 세력과 공존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명맥을 이어나가고자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연나라는 요서지역에 일종의 군사적 완충지대 성격의 네트워크 거점을 형성하였던 것으로보인다. 정가와자유형은 연산이남 연문화 중심지 및 그 주변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요동지역의 중심 세력이었던 정가와자유형 집단의 정세를 파악하는 것은 연나라에게도 중요했을것이다. 다만, 지리적 한계로 인해 남동구-동대장자유형이나 원대자 유적군과 달리 어떤 정치? 외교적 성격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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