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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수정 (朝鮮大學校)
저널정보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東亞人文學 第62輯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 - 33 (33page)
DOI
10.52639/JEAH.2023.0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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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초기 제화시의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제찬(題贊)을 중심으로 하였다. 고려 중엽 이후 소수 지식인 사이에서 시와 그림이 교류되었다면, 조선 초기는 왕실을 중심으로 그림과 시에 대한 소통이 활발하면서도 집단화되었다. 이러한 데에는 당시 안평대군이 다양한 시서화 활동을 주도하면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그 중에서도 <몽유도원도> 제찬은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가장 성대하게 이루어진 제화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몽유도원도>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이 하룻밤 꾼 도원(桃源)의 꿈을 안견에게 그리게 하여 사흘[3일] 만에 완성한 것이다. 안평대군은 이에 <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를 짓고, 도원 꿈의 과정과 그 내력을 기록하였다. 안평대군은 당시 원로 대신과 집현전 학자 등 21명의 제찬 시문(詩文)을 받아서 시화권(詩畵卷)으로 완성하였다. 이러한 <몽유도원도> 제찬은 시회(詩會) 활동 중에서도 <몽유도원도>를 중심으로 21인의 공동 창작이라는 데 유의미하다.
본고에서는 먼저 조선 초기 제화시 문화 양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조선 초기 왕실을 중심으로 그림과 어우러진 제화시에 대한 창작이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사례가 활발해졌다. 그 중심에 있었던 <몽유도원도> 제찬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을 중심으로 21인의 작품이 예술적 심미성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몽유도원도> 제찬은 꿈과 이상향이라는 초월의 세계로 그 예술적 사유를 넓힌 것이다.
다음은 <몽유도원도> 제찬의 양상을 고찰하였다.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 칠언절구 제시와 함께 21인 제찬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도원도에 대한 인식과 현실 대처의 바람, 그리고 夢中遊, 선경의 묘사 양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기존의 공동 창작 시화권은 주로 현세 산수 중심이었다. <몽유도원도> 제찬은 꿈을 통한 이상향에 대한 제시(題詩)이다. 이로써 조선 초기 제화시 영역의 다양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조선 초기 제화시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주요한 기틀이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조선 초기 제화시 문화 양상
Ⅲ. <몽유도원도> 제찬 양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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