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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민한 (목포대학교) 유연실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의료역사연구회 의료사회사연구 의료사회사연구 제10권
발행연도
2022.10
수록면
85 - 136 (5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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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은 1909년 광주에서 한센병 치료를 목적으로 설립된 나요양소를 모체로 한다. 광주 나요양소는1909년 선교사 포사이트가 나주 남평에서 발견한 한센병 환자를 광주로 이송하면서 치료를 시작했으며, 1912년11월 15일 한센병 환자 전문 수용기관으로 정식 개원하였다. 광주 나요양소는 1926년 도시민들의 반발로 여수 율촌면의 신풍반도로 이전하였다. 1962년 이후 애양원은 한센인 정착촌의 형성과 소아마비 중심의 진료체제로의 전환 속에서 환자공동체가 점차 해체된다. 애양원은 일제시기 기독교 나요양소의 대표적인 모델로서 환자 자치조직의 운영과 자활 노동을 통한 경제적 자립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다. 본고는 애양원의 환자 자치조직의 운영에 주목하여 크게 두 가지 측면을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첫째, 애양원 환자자치조직과 교회 권력의 관계를 시기별로 검토하여, 환자공동체의 성격 변화를 고찰하였다. 애양원은 광주 나요양소시기(1910-1926), 여수 애양원 시기(1926-1934), 일심회 사건과 김응규 목사 퇴진 운동 이후 시기(1934-1940)까지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겪는 동안 그 성격이 ‘선교사 중심의 신앙공동체’에서 ‘환자 중심의 생활공동체’로 변화하였다. 이는 애양원이 운영지도부(병원ㆍ 교회)와 환자 자치조직의 관계에 따라 공동체의 성격이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 나요양소의 환자 자치조직은 선교사의 지도하에 성장했으며, 환자들의 우두머리인 회장도 병원장에 의해 임명되었기 때문에 독립적인 권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1926년부터1934년까지는 집행위원회(부장회)를 중심으로 환자 자치조직이 성장하면서, 교회 권력과 자치조직이 서로 대립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는 1934년 반교회적 일심회 사건과 1938년 김응규 목사 퇴진 운동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일심회 사건 이후 1936년 환자 자치조직이 재편되고, 병원장이 일부 집행위원에 대한 임명권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병원장의 환자 자치조직에 대한 견제와 통제가 강화되고, 교회 권력과 환자 자치조직의 운영이 일원화되면서 신앙공동체적 성격이 회복된다. 둘째, 애양원 한센병 환자들의 주체성을 검토하였다. 애양원 내에서 환자들은 신앙을 통해 교회 권력에 접근하였고, 11개 부서(시기에 따라 변화)의 장을 환자들이 선출하여 집행위원회(부장회)를 구성하였다. 환자가 자치조직의 대표(집행위원/ 부장)를 직접 선출하여 애양원의 운영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환자들은 교회 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했다. 또한 환자들은 노동 자활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 가정사를 구축하여 가족단위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환자 자치조직의 자율성은 교회 권력의 견제 속에서 축소되기도 하였지만, ‘부장회’와 같은 환자 자치조직의 자율적 운영은 환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며, 주체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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