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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혜인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11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301 - 348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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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베트남 난민 수용과 구호는 1차와 2차로 나누어서 이루어졌다. 1차는 1975년 십자성 작전으로 불리는 해상철수 작전을 통해 구조된 경우로 1975년 5월 13일 부산항에 들어온 우리나라 첫 베트남 난민이었다. 이들은 총 1,364명으로 부산항에 내려 입국절차를 밟은 뒤 舊부산여고 건물에 마련된 난민임시구호본부에 수용되었다. 부산시와 대한적십자사는 이들에 대한 수용과 보호를 1975년 말까지 지속하였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천 5백 여 명 이상의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하여 보호하고 그 이후 과정까지 살펴볼 수 있었던 데는 대한적십자사의 확장된 조직력과 봉사단의 지속적인 봉사활동에 의지한 부분이 컸다. 1977년 6월 입항한 베트남 난민이 9월 부산 재송동에 마련된 베트남 난민 보호소에 수용되면서 한국에서의 제2차 베트남 난민 구호가 시작되었다. 1993년 5월 17일까지 17년간 구조된 1,382명의 베트남 난민이 140여 차례에 걸쳐 부산에 수용되었다가 정착국으로 떠났다. 1차 베트남 난민 구호 계획의 중심과 자본, 운용의 중심이 대한민국 정부였다면 제2차 베트남 난민 구호는 UNHCR(유엔난민기구)와 대한적십자사의 협약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들을 제3국 정착까지 임시보호 하는 입장에 따라 구호를 실시하였다. 이 논문은 1970년대 대한적십자사가 베트남 난민 수용과 구호활동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대한적십자사가 제공한 내무문건을 통해 1975년, 1977년 대한적십자사의 역할과 활동을 규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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