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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성재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52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77 - 10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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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말 유럽에 처음 나타난 매독은 16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증상의 완화와 잠복기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병이 사라지고 있다는 낙관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며, 종종 매독이 천재적 영감을 준다는 오해에 빠지기도 했다. 17세기에 들어 종교적 믿음이 사회 전체적으로 커지자 매독환자는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수은을 통한 치료 노력이 가져온 신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더 큰 문제는 치료의 실효성에 있었다. 또한 예방 의학적 접근 역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가운데 17세기 말의 전쟁과 기근은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18세기는 인구가 국부의 원천이라는 생각 속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매독 문제에 개입한 시기였다. 특히 선천성 매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것은 1780년 파리에 성병 전문 병원인 보지라르의 창설을 가져왔다. 매독이라는 질병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 병원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매독 치료를 위해 모유의 형태로 수은을 사용한 방법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 여성을 실험과 치료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도덕적 비난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병원이 보여준 매독에 대한 체계적인 의학 실험은 하나의 성과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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