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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상기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충청문화연구 충청문화연구 제28·29집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5 - 4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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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대전 지역 유림을 비롯한 농민,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여 대전을 식민도시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전인들은 일제의 침략에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으로 저항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3.1운동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주독립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1895년 9월 봉기한 유성의병은 공주의 와야동 전투에서 관군에 의해 패산하였지만, 을미의병의 효시로 평가된다. 유성의병에는 송근수, 신응조, 송도순 등 대전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대전지역 유림들은 을사늑약 이후에는 자결의 방법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송병선은 1905년, 송병순은 1912년 자결하여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였다. 송병화는 1910년 국망에 통분하여 산속으로 은거하였다. 그의 문인인 송병관 역시 가족을 이끌고 그의 뒤를 따라갔으며, 송용재는 1910년 아편을 먹고 자결을 기도하였다. 또한 대전의 회덕과 진잠 지역의 개화계열의 인사들은 신식 학교를 세워 국권을 회복하자는 신교육구국운동을 펼쳤으며, 국채를 상환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대전지역에서는 거족적인 3․1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인동시장에서는 3월 3일 만세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유성에서도 3월 16일 이상수와 이권수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있은 이후 3월 31일과 4월 1일에 걸쳐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외에도 세천, 유천, 가수원, 회덕, 산내, 갈마동 등지에서 4월초까지 대한의 자주 독립을 외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 이후 대전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은 청년운동, 학생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등 여러 부문에 걸쳐 전개되었다. 청년운동은 1927년 대전청년동맹이 결성되면서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하여 대중운동을 추진하였다. 학생들은 일본인 교사 배척과 학교 설비 확충 등을 요구하는 동맹휴교를 전개하였다. 대전중학교에서는 비밀단체인 선우회를 설립하여 노동단체와 연계하면서 활동하였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일제의 식민정책에 저항하여 소작쟁의와 파업 등의 방법으로 일제의 착취에 저항하였다.
한편 대전인들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나 만주지역의 독립군부대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인물로는 신채호와 김용원, 이강하, 민충기 등이 있다. 송석형과 이정헌은 광복군으로, 최철호는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여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전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러 부문에서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일제의 침략 정책사에 대한 연구도 요구된다.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대전 독립운동의 역사를 올바로 밝히고 이를 지역인에게 보급하는 일은 역사학자만이 아니라 행정 당국자를 포함한 지역인들의 책무라 하겠다.

목차

한글요약문
1. 머리말
2. 한말 대전지역 독립운동
3. 일제강점기 대전지역 독립운동
4. 맺는말 - 향후 과제
참고문헌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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