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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수진 (국립항공박물관)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 제63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99 - 13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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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지역은 지금까지도 서울 내 외국군 주둔지로서 지역적 특수성을 지닌다. 용산지역에 대한학문적 이해는 다각도로 시도되었지만, 항공 역사라는 관점에서 한반도 최초의 동력 비행이 이루어진 용산연병장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용산의 동력 비행은 연구 초기부터 인지되었지만 당대 사료에 대한 정확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아, 비행 장소의 지리적 고증과 구체적인 비행 과정 분석에 미치지 못했다. 본고는 1910~1920년대 용산 비행대회 사례를 검토하고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용산연병장의 지리적 위치와 기능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한반도 주둔 일본군의 항구적인 군사기지로서 조성된 용산연병장은 경성 일대에서 가장 넓고 평탄한 장소이자 관민의 공공장소였다. 한반도에 정식 비행장이 없던 시절 용산연병장에 격납고 등임시 시설을 설치하고 비행장으로 활용하였다. 1913년 4월 3일 나라하라 산지에 의해 한반도 최초의 동력 비행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남영동 일대에 위치했던 용산연병장이다. 1915년 오자키 유키테루의 조선물산공진회 방문 비행, 1917년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 등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용산연병장의 초기 비행대회는 이후 개최되는 비행대회의 전범이 되었고 조선에서 항공 전반에 대한 지식과 저변을 넓히는 데에 기여했다. 안창남, 장덕창, 권기옥, 이정희 등 조선인 비행가들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 부지에 신 연병장이, 여의도에 대규모 연습장이 건립되면서 비행의 중심지는 여의도로 옮겨갔다. 하지만 여의도연습장이 비행장으로 기능하는 동안에도 1925년 일본 해군기의 불시착륙, 1926년 조선모험비행대회, 1927년 기베 시게노의 향토 방문비행 등 용산연병장에서 비행대회 및 이착륙 기록이 확인된다. 조선에서 여성 비행가가 최초로 비행한 곳 역시 용산연병장이었다.
여의도비행장의 지형적 한계와 시설 미비로 용산연병장의 비행장 기능이 일정 기간 공존했다. 이러한 상황은 1929년 여의도에 경비행장이 정식 개장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본격적인 우리 항공 역사가 시작되기 전, 전사의 공간을 담당했던 용산연병장은 비로소 우리나라의 비행가들에 의한 우리 항공 역사의 시작을 여의도 시대로 넘겨주게 되었다. 용산 비행대회를 살펴봄으로써 초기 비행대회의 사실관계를 정돈하고 항공에 대한 조선의 인식을 파악할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용산기지의 건설과 연병장의 변천
3. 용산 비행대회 사례
4. 용산연병장의 비행장 기능과 조선에 미친 영향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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