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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인원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영토해양연구 영토해양연구 제24권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51 - 9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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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기의 관찬(官撰) 지리지(地理志)의 제작은 국가 문물 제도 정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편찬 사업이었다. 특히 지리지는 국가 수취 체제의 필요성 이외에도 국가의 영토 개념이 들어가는 중요한 관찬 사업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요동 지역을 위시한 북방 지역 이외에도 하삼도(下三道)의 해도(海島)에 대한 영토 인식이 확대되어 가는 시기였다.
조선 정부의 해도 인식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뿐만이 아니라 조선 초기에 편찬된 지리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리지의 편찬 과정에서 해도에 대한 숫자와 내용 등이 다양해지고 확대되기 때문이다.『동 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산천조(山川條)」에 수록된 해도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 비해 훨씬 정밀하고, 답사를 바탕으로 축적된 경험들로 구성되었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서는 12개만 파악된 해도의 수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107개를 거쳐 『동국여지승람』에서는 572개로 확대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해도(海島)를 산천조에 편입하여 영토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조선 초기 중앙 정부의 해도 인식은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조선 초기의 지리지 편찬 과정에서 중앙 정부가 각 도의 지리지 편찬사목(編纂事目)을 하달하고 국가의 관리들이 직접 조사하여 확인한 내용을 여러 번에 걸쳐 확인하여 기록하였다. 해도에 대한 내용 역시 편찬사목으로 정하여 정확한 파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초기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에 대한 탐색뿐만 아니라, 요도나 삼봉도에 대한 탐색을 통하여 존재하는 해도와 존재하지 않은 해도에 대한 파악을 끝낸 후, 우산도와 무릉도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였으므로 국가가 공식적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 초기 해도 인식
Ⅲ. 『동국여지승람』 편찬과 해도(海島) 기록 검토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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