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영은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인문학연구 인문학연구 제38집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51 - 70 (20page)
DOI
10.31323/SH.2022.12.38.0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에서는 해방 후 공산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던 홍명희가 1948년에 월북을 단행하게 된 상황에 주목하며, 사상적 지향과 체제 사이에서 모순과 방황을 체험한 해방기 지식인의 자기서사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식민지 시기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던 홍명희는 1939년에 『임꺽정』 연재를 중단하고 경기도 양주군으로 이주해서 은둔했다. 친일 협력의 과오를 남기지 않았던 지식인이자 존경 받는 원로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혔던 홍명희는 해방 후에도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선언했지만, 1947년 10월에 민주통 일당의 당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미국과 소련을 모두 불신하며 해방기 중도적인 민족주의자로서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던 홍명희는 자기 자신을 반공주의자로 규정했다. 통일이냐 분열이냐를 외치며 민족의 미래가 통일과 독립에 있음을 거듭 강조했던 홍명희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지지 평양 시민대회 참관을 위해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같은 행사에 참가했던 김구와 김규식이 서울로 돌아온 것과는 달리 홍명희는 평양에 남았을 뿐만 아니라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부수상에 임명되었다. 1948년 초 서울에서 자신은 절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던 홍명희의 정치적 전향은 역설적이게도 자기서사의 은폐와 모순의 측면을 환기시킨다.

목차

국문초록
Ⅰ. 고집을 세우지 못하는 약점
Ⅱ. 민주통일당의 당수
Ⅲ. 혁명가적 양심과 민족적 양심
Ⅳ. 문학의 체면 문제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3-001-0003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