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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104輯
발행연도
2022.10
수록면
231 - 26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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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2월 28일자 ≪경향신문≫에 소설가 박계주의 「「순국의 처녀」」가 3·1운동 특집기사로 실렸다. 해방 후 좌우익이 2년째 3·1운동 기념식을 따로 열고 있는 상황에서 기사에 대한 반향은 컸다.
8월 유관순기념사업회 결성이 추진됐다. 유관순의 고향 천안 아우내(병천) 주민들이 기념사업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유관순과 同鄕의 고흥 유씨 宗親들이 적극적이었다.
사업회는 아우내 독립만세운동記念碑 건립을 우선 추진했다. 병천 일대 주민들은 건립 성금을 모으고, 기념비 터를 닦고, 진입로를 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기념비는 일제의 황국신민서사비 표면을 갈아내 고 사용했다. 정인보가 지은 한글 비문을 젊은 서예가 김충현이 궁체로 썼다. 비 제목은 ‘기미독립운동 때 아우내서 일어난 장렬한 자취라’. 해방 후 첫 한글비로 주민들은 일제를 쫓아내고 세운 戰勝碑으로 여겼다.
주민들은 28년 전 만세운동의 실상과 순국자를 조사했다. 유관순 외에 현장에서 19명이 사망했다. 조사 내용은 映畫 시나리오와 유관순 傳記에 그대로 반영됐다.
영화는 9월 말부터 한 달간 현지 촬영을 했다. 아우내장터 만세 장면에 주민 3000명이 모여 촬영진을 놀라게 했다. “커트마다 감격이요, 장면마다 눈물이었다”는 관계자 말대로 배우•관중•촬영진이 함께 감동의 눈물바다를 이뤘다.
11월 27일 제막식도 주민이 모두 준비했다. 수십 명 손님들을 주민들 집에서 재우는 등 행사 전 과정을 책임졌다. 주민들은 1947년 한 해, 만세운동 기억 속에서 산 셈이다.
병천일대 주민들이 기념사업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참혹하게 순국한 이웃을 추모하는 동시에 아우내만세운동을 널리 알려 민족 단결을 꾀하려는 데 뜻이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유관순기념사업회가 계획한 7대 사업
Ⅲ. 아우내 만세운동기념비 건립 과정
Ⅵ. 아우내 주민 힘으로 치른 제막식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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