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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남중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고조선단군학회 고조선단군학 고조선단군학 제48호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39 - 95 (57page)
DOI
10.18706/jgds.2022.8.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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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북 서북부 일대에 고조선 준왕 및 마한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원인과 조선 후기에 마한을 후기 고조선의 정통으로 보게 된 배경을 고찰하였다. 『삼국지』 한전에는 고조선 준왕이 한 지역으로 내려왔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도 있으나 마한을 禮俗이 없는 사회로 묘사한 서술 태도로 보면 『삼국지』 찬자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준왕 남래를 각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시(240~249) 연간 조위가 왜와 교류 과정에서 마한 지역을 거쳐 갔을 상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므로 『삼국지』의 준왕 기사는 견문을 통해 획득된 정보가 바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려 말 익산에서는 백제 의식과 구별되는 마한 의식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백제 무왕의 무덤은 마한 무강왕의 무덤으로 알려졌으며, 기준성 전승도 전한다. 이것은 백제 통치 하에서도 마한계 세력이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하였던 점과 통일 후 신라의 舊 백제 지역에 대한 정책과도 관련된다. 마한은 고조선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마한 의식은 곧 고조선 계승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가 되면 위만조선 대신 마한을 고조선의 정통 계승자로 보는 마한 정통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등장한다. 홍여하는 고조선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위만의 나라와 마한이 되었으며 기자조선 즉 한조선 다음 고조선사는 마한을 정통으로 놓고 서술하였다. 홍만종과 안정복은 마한을 중국 삼국 시대의 촉한에 비유하였으며, 이익은 마한으로 국호를 바꾼 것은 주나라가 도읍을 옮기면서 국호를 바꾼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였다. 비록 후기 고조선이 남과 북으로 나뉘었지만 고조선의 정통 계승자는 남쪽 왕조인 마한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의 형성 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조선 시대 기자 숭배의 확대와 위만에 대한 비판적 태도 확산을 들 수 있다. 둘째는 고조선과 삼한이 후기 고조선 시기에 공존했다는 인식이 확대된 점이다. 그 이전에는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참 뒤에 삼한이 등장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다가 위만조선과 마한이 동시기에 공존했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정통을 따지게 된 것이다.
후기 고조선 마한 정통론은 한백겸이 우리 역사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살폈던 것과 달리 우리 민족이 하나의 역사 공동체를 유지했다는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마한 지역은 위만조선과 달리 계속 우리 민족의 터전이 되었다는 점에서 마한을 고조선의 정통 계승자이자 한조선 멸망 이후 후기 고조선의 대표 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마한은 위만조선보다도 정통성을 지닌 고조선 왕조라는 점에서 고조선사에서 중요한 세력이라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조선 준왕 南來 전승과 전북 서북부의 마한 의식
Ⅲ. 후기 고조선 마한 정통론의 확산과 형성 배경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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