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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대한 송인호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도시사학회 도시연구 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30호
발행연도
2022.7
수록면
99 - 128 (30page)
DOI
10.22345/kjuh.2022.07.3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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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숭례문과 주변지역의 도시공간의 변화를 일제강점기 이전과 일제강점기 전기, 후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숭례문은 한양도성의 정문이었으며, 숭례문 주변지역은 조선후기 이후 장소적 이점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대한제국기도로의 정비로 도성 밖의 상업공간이 점차 도성 안으로 축소되었으며, 숭례문은 전차의 개통으로 인해 문의 개폐 제도가 사라지고, 주변의 한양도성이 점차 훼철되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전기 숭례문 주변지역은 시구개정사업으로 인하여 숭례문과 연결된 남대문통, 태평통, 한강통이 정비, 확장되었다. 특히 남대문통의 조선은행 앞 광장은 식민통치시설이 밀집한 공간으로 보차분리, 가로수 식재, 도로 포장 등 새로운 가로의 운용이 나타났다. 반면 숭례문은 점차 도성의 정문이라는 상징성과 역할이 약화되고 남대문이라는 속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후기 숭례문 주변지역은 조선신궁과 경성역이 들어서면서 도시공간의 경관이 크게 변하였으며, 새로운 시설물들을 연결하기 위한 도로들이 신설되었다. 태평통과 남대문통 등 기존 도로들도 정비되어 가로의 운용이 변하였다. 하지만 숭례문에서 진행되던 다양한 의례는 경성역과 조선신궁 등 새로운 식민통치시설로 옮겨지게 되었고, 숭례문의 위상은 거의 사라지고 단절된 도시 공간 속의 오브제로만 남게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일제강점기 이전
Ⅲ. 일제강점기 전기(1910~1924)
Ⅳ. 일제강점기 후기(1925~1945)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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