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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손신영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화학회 한국민화 한국민화 제16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20 - 47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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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륙재의식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범패와 작법 즉 노래와 악기연주 · 춤을 즐겼는데, 그 의식장면은 감로탱에 재현되었다. 감로탱 중단의 시식단 왼쪽 편에 범패작법하는 승려들이, 그 앞쪽에는 발원자와 구경꾼들이 묘사된 것이다.
감로탱 중단의 의식장면은 시기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16~18세기에는 범패작법승과 송경승의 공간이 나뉘지 않은 채, 의식 진행 상황만 시사되어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승려들의 소임에 따라 공간이 분리되어, 범패작법승이 송경승 보다 전면에 등장하는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구경꾼들이 등장해, 마치 무대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처럼 묘사되며 시대변화를 드러냈다.
이글에서는 감로탱에 내포된 공간을 3개의 공간으로 나눠 살펴보았다. 그림 속 공간은 한밤중인 새벽 1~3시에 의식이 치러진 곳인데, 16세기 무렵까지는 실내일 가능성이 높고, 그 이후로는 실외였을 것으로 유추하였다. 실제로 의식이 설행된 곳은 기록을 통해, 삼단이 건물로 세워진 사례로는 진관사수륙사가 유일했음을 추론하였다. 수륙재는 대부분 사찰 내에서 설행되었으나 드물지 않게 한양 도성문 밖이나 한강 등지에서도 설행되었는데, 고혼들의 사고장소와 인접한 곳이 선택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림이 걸렸던 곳은 화기를 통해 파악하였는데, 시기가 내려올수록 봉안 장소가 구체적으로 명기되며 대체로 주불전에 봉안된 바를 알 수 있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의식장면은 획기적으로 바뀌었는데, 운룡문 기둥에 줄을 묶어 여러 번과 금은전 등이 매달리고 시식단에 계단이 부가된 모습을 통해, 실제 공간은 사찰의 중정으로 추론하였다. 시식단 좌우의 보자기 장식 화병과 탁자는 왕실 하사품으로 보았으며, 촛불의 유무는 영산재 식당작법 도상과 함께 실제 의식이 영산재와 수륙재가 혼재되어 설행된 결과로 판단하였다.
기록에서 보듯, 수륙재는 노래 · 타악기연주 · 춤이 어우러지고 그림과 깃발이 나부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즐겁게 흥분시키는 축제의 장이었다. 감로탱 중단 의식공간은 16~18세기에는 현장 분위기 대신 의식의 기능과 의미가 강조되다가, 19세기 들어 현실을 반영하는 당대 예술문화 분위기를 수용하며, 儀式현장이 실감나게 재현되는 불교풍속화로 거듭나게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감로탱을 통해 본 세 공간
Ⅲ. 감로탱 의식공간 변화의 의미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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