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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원진 (세종대학교)
저널정보
고조선단군학회 고조선단군학 고조선단군학 제47호
발행연도
2022.4
수록면
159 - 196 (38page)
DOI
10.18706/jgds.2022.4.4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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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제1현도군의 위치와 성격 등을 예맥ㆍ원고구려사회와의 연관성을 통해 살펴보았다. 제1현도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 왔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三國志』 동옥저전은 사료로서 문제가 있음이 지적되었다. 또한 ‘옥저’라는 용어는 원래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 숲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였는데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옥저로 기록되었고 이것이 후대 옥저지역에 현도군이 설치되었다고 와전되었을 수 있다. 제1현도군의 위치는 고구려지역으로 파악할 때 이후 한군현의 통폐합 과정이나 고구려의 흥기 과정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제1현도군의 위치는 고구려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압록강 중상류 유역은 위만조선 시기에 창해군에 포함된 지역이었다. 창해군 설치를 계기로 한나라는 신흥 예맥사회의 잠재력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해군은 28만구라는 인구, 대흉노 정책의 일환이라는 국제정세, 훗날 고구려의 흥기 등을 감안하면 요남지역과 압록강 중상류를 포함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원고구려 사회는 위만조선의 간접지배를 받다가 이 시기 반기를 들었지만 한나라의 군현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창해군 설치는 3년만에 실패로 끝난다. 이후 한나라가 현도군을 설치한 것은 위만조선과는 무관하게 신흥세력인 원고구려를 견제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도군은 위만조선이 멸망한 이듬해 큰 전쟁을 치르지 않고 설치한 것으로 보아 직접 통치를 위한 군현이나 광역의 기구는 아니라고 이해된다. 또한 책구루 기사는 제1현도군 시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제1현도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통화 지역도 염두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제1·2현도군 관련 사료 검토
Ⅲ. 제1현도군의 위치와 고구려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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