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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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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27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7 - 51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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胎室은 왕실 자녀의 태를 묻은 곳이다. 태실의 설치는 비록 왕자의 신분은 아니지만 신라시대 김유신에서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胎藏經󰡕이 과거시험에 포함되면서 제도화되었다. 이러한 왕실의 藏胎文化는 조선전기에 정착하는데 가봉태실은 1대 태조, 왕자태실은 4대 세종, 왕녀태실은 9대 성종 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태실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들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하여 분야별 성과물이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태실 연구의 기초가 되는 胎室碑와 胎誌石의 명문 자료가 集成되지 않았고, 연구자에 따라 다르게 판독되어 혼선이 있어 왔다. 태실비와 태지석은 조선왕실 자녀의 출생일시와 장태일시를 파악하고 나아가 왕실 系譜圖를 재구성하는데 필수적인 고고학적 1차 사료이기 때문에 전수조사와 명확한 판독이 중요하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고고자료의 명문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수조사를 거쳐 재판독하였고, 일부 자녀에 대해서는 문헌자료와 비교검토하여 자료간의 차이를 밝혀보았다. 또한 아기태실의 역사고고학적 의의와 가봉태실의 석조미술사적 계승관계를 살펴보았다. 가봉태실의 경우 중앙석물과 그 주변으로 난간석을 마련하였는데 이에 대한 연원을 찾아보았다. 초보적인 단계이지만 중앙석물은 八角圓球型 浮屠에서, 난간석은 공민왕릉에서 그 연원을 비정하였다. 태실의 연구는 태실비와 태지석의 명문을 통하여 왕실의 계보도와 석조미술의 편년을 설정하는데 기여하는 바 크다. 胎壺도 같은 예이다. 이외에도 태실의 입지를 통한 풍수, 아기태실과 가봉태실을 조성하면서 지역민에게 미치는 경제적 피해, 作變을 통한 지역민의 동향 등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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