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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선표 (독립기념관)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85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38 - 284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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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30년대 미국 본토에서 중국후원회의 결성과 조선의용대 후원을 둘러싸고 대두된 미주한인사회의 진보적 변화와 대응, 특히 재미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대한인국민회의 대응에 초점을 맞춘 글이다. 1930년대 재미한인사회에는 만주침략과 중일전쟁 발발이라는 일련의 사건 속에 기존의 흐름과 달리하는 변화의 조짐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변화의 조짐을 표출한 대표적인 사안은 기존 세력을 대표한 대한인국민회와 새로 결성한 중국후원회 및 신진 세력을 대표한 조선의용대후원회 발기인 측간에 조선의용대 후원을 둘러싼 대응 문제였다. 본고는 이러한 점을 고찰하기 위해 1930년대 재미한인사회의 동향을 파악하였고 중국후원회와 조선의용대 후원회 결성을 둘러싸고 대한인국민회가 어떻게 대응하였는지에 주목하였다. 1938년까지 중국후원회의 결성 문제에 비교적 관대한 입장에 서 있던 대한인국민회는 중국에서 조선의용대가 설립된 이후부터 중국후원회 측과 마찰을 빚기 시작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중국위원회를 직할 체제로 관리하기를 원했고 중국후원회는 이를 거부하고 독자활동을 추진하였다. 상반된 입장의 결과 중국후원회는 조선의용대 후원을 위한 발기대회를 독자적으로 개최하였다. 1939년 제3계 중앙집행회의를 개최한 대한인국민회는 조선의용대후원회 발기인들을 불러 공동 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에서 대한인국민회는 조선의용대 후원문제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해서 후원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발기인 측은 임시정부를 낡고 고루한 사상을 가진 집단으로 간주하였고 대신 새로운 무장 조직으로 결성한 조선의용대 세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런 인식의 차이로 양자는 이견을 좁힐 수 없었고 결국 분립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처럼 1930년대부터 불고 있던 변화의 바람을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재미한인사회는 역량의 결집 보다 분열로, 나아가 새로운 사상과 이념을 가진 신진 세력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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