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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44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5 - 3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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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四天王寺)는 당(唐)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밀교승 명랑(明朗)의 주도 하에 창건되었다. 신라는 『금광명경(金光明經)』에 기초한 기존의 사천왕호국신앙(四天王護國信仰)과 달리 거기에 『관정경(灌頂經)』의 오방신(五方神)과 문두루비법(文頭婁秘法)을 결합시키는 밀교적(密敎的) 작단(作壇)을 설행(設行)하였다. 명랑과 혜통(惠通)이 가지고 온 새로운 밀교적 작법(作法)은 신라를 지켜줄 무수한 천왕(天王), 신왕(神王), 용왕(龍王) 등의 모습을 직접 현현(顯現)시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보다 대중적이고, 감각적인 밀교의식(密敎儀式)이었다. 양지(良志)는 사천왕사 목탑의 기단부에 사천왕천(四天王天) 아래 3개의 층급(層級)에 살았던 야차(夜叉), 존신(尊神) 등을 재해석하여 야차와 신장(神將)으로 형상화하고, 목탑의 계단(階段)을 밟아 탑신에 올라가는 길을 기단에 배치된 3개의 층급을 지나 사천왕천에 도달하는 길로 이미지화하였다. 일연(一然)이 이를 ‘팔부신장(八部神將)’이라고 한 것은 후대의 ‘팔부중(八部衆)’ 그 자체를 말한 것이 아니라, 이 신장들이 천왕(天王)을 도와 불법을 수호하는 그의 권속(眷屬)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양지는 천왕의 권속과 야차들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이를 신라인들의 눈앞에 현현시켜, 보이지 않는 사천왕의 더욱 강력한 힘을 확신하도록 유도하였다. 한편 사천왕천 아래 3개 층급의 야차들이 사천왕의 발 아래에서 분리되어 탑의 기단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로 인해 계단을 통해 이 목탑의 기단 위로 올라간 신라의 왕자(王者)가 소조신장상벽전(塑造神將像壁塼) 위의 테라스를 걷거나, 벽전 위에 서있을 경우, 그는 단순한 왕자가 아니라 3층급의 야차를 밟고 서있는 사천왕과 동격이 된다. 이처럼 사천왕사 목탑 기단의 벽전에는 중대권력을 정점화(頂點化)하려는 양지의 또 다른 언설(言說)이 숨어있었다. 문무왕은 거대 제국 당(唐)의 공격 앞에서도 사천왕사의 불교의례를 통해 절대적인 중심성을 회복했고, 밀교적 작단(作壇)으로 피어난 사실적인 소조상들은 그것을 모두가 보고 느끼게 하는 장(場)이었다. 사천왕사 위 낭산(狼山)에 있었던 선덕여왕의 장지(葬地)가 도리천(忉利天)으로 표상되었듯이, 사천왕사는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으로 올라가는 불국토 신라의 입구, 경계 지점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결국 사천왕사는 신라 왕경(王京)의 남방 끝에 불과한 공간이 아니라, 밀교의례 속에서는 불국토 신라의 입구이며, 이곳은 오방신(五方神)과 사천왕(四天王)이 지키는 불국토의 경계 지점이었다. 이후 봉성사(奉聖寺) 창건으로 시작되는 밀교승 혜통이 주도한 신문왕대의 새로운 성전사원체제는 오방신(五方神)과 사천왕(四天王)으로 수호되는 신라 불국토를 더욱 시각적으로 표상하여 왕경의 사방(四方)으로 성전사원을 확대해나간 과정이었다. 왕경의 사방에 의도적으로 배치된 성전사원(成典寺院)들은 국가의례(國家儀禮)의 장(場)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곳은 왕경과 지방을 연결하는 접점이고, 지방인이 왕경으로 들어오는 입구이며, 왕경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신라 국토 전체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신라 중대왕권은 기본적으로 당과의 사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려한 점이 있지만, ‘태종(太宗)’ 무열왕의 묘호(廟號) 문제로 알 수 있듯이, 대제국인 당과의 싸움에서 얻었던 자신감 또한 잃지 않았다. 성전사원에 기초한 신라의 독자적인 국가의례는 ‘호국(護國)과 왕실(王室)의 영속(永續)’을 기원한 중대왕권의 의지 속에서 창출되었으며, 중대왕실은 그러한 의례를 통해 신라국가를 천하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그것을 지배하는 자신의 절대성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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