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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인규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학회 한국불교학 한국불교학 제74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29 - 25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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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려 천태종’의 창립이후 조선초 통폐합에 이르기 까지 종단의 존재 양상의 추이 및 동향에 대하여 살펴본 연구이다. 의천의 종단 창립이후 조선초에 이르기 까지 승과가 실시되어 고승이 배출되는 등 국도 개경을 중심으로 종단이 운용되었다. 무신집권기초 개경 인근에서도 결사가 전개되었으며, 지방 남단 백련사 결사가 전개되어 수선사계 고승들과 더불어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원 간섭기 후반 백련사 고승 靜照而安은 釋敎都摠攝으로서 묘련사를 중심으로 종단을 주도하였으며, 원혜와 정오 등이 왕사로 책봉되었다. 특히 정오는 禪敎 摠攝調提로서 불교계를 주도하면서 국청사 본산을 중흥시켜서 천태종단의 중흥을 모색하였다. 조인규 가문 출신의 의선은 불교계에서는 드물게 三藏法師 慈恩君으로서 묘련사를 중심으로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하지만 공민왕대 이후 의선의 문도나 관련이 있는 천태종 고승들이 수원 만의사를 중심으로 근기지방 일대에서 종단을 주도하였다. 예컨대 天台宗事 熙菴과 天台判事 福利君 懶菴元公, 天台都大禪師 了圓, 奉福君 神照, 大天台宗師 玄見, 禪敎統攝 空庵祖丘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백련사의 결사정신을 되살리고자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의 전개에서 종단은 기존의 천태종과 중앙의 묘련사파의 소자종과 백련사계의 법사종으로 분파되었던 듯하다. 조선 건국직후 1394년(태조 3)에 공암조구가 국사로 책봉되어 조계종과 더불어 잠시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하지만 태종의 불교탄압과, 세종의 선교양종 체제 실시로 천태종단은 다시 통합되었다가 곧 조계종으로 흡수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고승 判禪宗事事 중호와 天台宗師 행호가 천태종계를 주도하였으며, 특히 행호는 백련결사의 본산이었던 백련사를 중창하여 천태종을 중흥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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