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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남도문화연구 남도문화연구 제3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 - 4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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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의 성립 배경을 고려전기 승정을 중심한 교단체제 변화의 흐름에서 파악하고, 고려후기 백련결사의 시공간적 전개 양상을 각 주맹의 신앙내용과 결사구성을 중심으로그 성격을 살폈다. 고려전기 승정권을 중심한 교단 간 교파 간 과도한 주도권 경쟁에 반발한 지방 사회에서의 승려모임과 세속신자와 함께하는 여러 결사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명리를 버리고 은둔자의 모습을 보였으며 종파를 넘어 사상교류 현상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백련사의 성립이 가능했다. 了世는 1232년 백련사를 건립하고 법화경 독송과 참회, 정토신앙을 바탕으로 신앙체계를 세우고 제명입사자 300여 인과 그 외에도 많은 신앙자를 확보하였다. 이를 계승한 천책은 1244년부터 1247년까지 상주 공덕산 동백련사에서, 이후 남백련사에서 요세의신앙체계를 계승하고 지방 호장층과 중앙 관인층의 입사를 이끌었다. 몽골침입기와 원간섭기 초기에 이르는 사회동요기에 백련사 법화신앙의 확장성이 높아서 결사가 지방사회곳곳과 개경에 까지 확산되었다. 원간섭기에는 원왕실과의 유대와 충렬왕의 기반 확보, 왕정복고시 관인층의 입지확보, 백련사 교단의 확장 등이 맞물려 묘련사와 국청사를 중심으로 승정 교단체제로 회귀하였다. 이때 중심역할을 한 丁午는 법화신앙을 강조하지만 신앙결사의 조직화가 보이지않은 점이 이를 반영한다. 그런데 無奇는 백련사 신앙결사를 이어받아 원간섭기에 體制 化되어 가는 교단을 비판하고 대중을 위한 법화경 독송, 미타 염불 등 신앙성을 강조한모습을 보였으나 입사조직화와 그 확장성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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