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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미리 (한신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구술사학회 구술사연구 구술사연구 제9권 제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51 - 92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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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80년대 중후반 학출활동가들이 택시노조운동에 투신하게 된 배경과과정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의 대상은 서울과 인천 지역으로 한정했다. 택시노동자들이 지식인운동에 영감을 준 최초의 사건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택시차량 시위였다. 이후 학출활동가와 현장노동자의 직접적인 결합은 1984년5월에 있은 대구택시시위를 전후해 이뤄졌다. 1984년 11월 30일 민경교통 박종만이 분신한 뒤 박종만추모사업회를 결성하는과정에서 제각기 활동하던 학출활동가들과 노조 설립을 추진하던 택시기사들이 결합했다. 이 과정에서 박종만의 부인 조인식이 학출활동가들과 택시기사들을 매개하는 역할을 했다. 1986년 초 발족한 박종만추모사업회는 이후 택시노조운동의 구심이 됐다. 서울의 경우 활동가들의 개별적인 동기가 크게 작용했다면 인천은 조직적 성격이강했다. 1987년 인민노련 소속 송영길이 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 내 운수노동상담실를 운영한 것이 시작이었다. 인천도 서울처럼 운수노보를 발간했으며 김장수 열사장례투쟁을 계기로 현장노동자의 관계가 매우 밀접해졌다. 1988년 자동차노동조합연맹에서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이 분리해 나온 뒤부터는서울과 인천 모두 지부장 선거에 결합한 뒤 지역지부를 장악해 활동했다. 이즈음부터1992년까지가 택시노조운동의 최전성기로 1987년 이후 서울과 인천의 택시노조는해마다 총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서울과 인천은 활동가들의 결합 동기 외에 활동 양상도 달랐다. 인천이 서울에 비해 감성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이었다. 이것은 지역의 규모와 함께 결합 동기의 차이, 주요 활동가의 학번, 그리고 소속조직의 활동방식과 관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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