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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수 (순천대학교)
저널정보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동국사학 동국사학 제61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21 - 15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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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의 종교 지형은 서학(천주교)의 확장과 동학의 창건으로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게다가 향촌사회는 18세기 이래 『鄭鑑錄』으로 대변되는 도참사상이 성행하여 民亂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18세기까지 국가의 이념이었던 유교와 백성의 위안처였던 불교는 19세기 종교 지형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점차 퇴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불교의 경우 고려시대에 누렸던 제도적 권리가 대부분 박탈되고 승려들은 면세의 특권이 없어지면서 양인 수준으로 신분이 하락하였지만 명산대찰에 대해서만큼은 국가와 왕실의 재정적 지원이 지속되었다. 19세기 국가에서는 頹落하거나 燒失된 사찰에 대해서는 空名帖을 발급하여 重修를 지원하였고, 왕실에서는 內帑金으로 각종 불사를 설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계는 침체를 면하지 못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승려들이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忠義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싸운 이후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뀐 측면이 있었지만 불교를 이단시하는 유학자들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山城과 史庫 등을 지키는 총섭제도를 통해 승려들은 양인처럼 軍役에 내몰리는 상황이 되었고, 또 종이를 만들거나 짚신을 만드는 등 온갖 잡역에 시달렸다. 19세기에 이러한 상황이 더욱 고착화되면서 승려들은 수행자로서의 권위가 실추되어 양인보다도 못한 천민으로 전락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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