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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성주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53집
발행연도
2017.6
수록면
167 - 187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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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최근 발견된 강원도 麟蹄의 金忠起씨 집안의 고문서를 중심으로 그 현황과 특징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인제 江陵金氏 집안의 내력을 살펴보았다. 또한 고문서와 족보, 구술 자료를 종합하여 강릉김씨의 移居 현황과 인제로의 移住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김충기家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는 戶籍類 10건, 敎令類 9건으로 총 19건이다. 호적류는 모두 准戶口이고 襄陽府에서 발급되었으며, 교령류 중 7건은 1903년에 발급된 空名帖이라는 특징이 있다.
호적류 중 강릉김씨인 金學龜, 金賢周의 준호구 9건을 통해 이 집안의 가계를 확인할 수 있었고, 강릉김씨 족보를 통해 김현주 이후의 가계를 보완할 수 있었다. 또한 강릉김씨 족보를 통해서 공명첩이 남아있는 金演泰와 金善卿이 김현주의 아들과 손자임이 확인되었다.
이 집안은 강릉김씨 ‘太師公 副正公 習讀公派’인데, 이들은 크게 4갈래로 갈라지면서 강원도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들 중 經坊(지금의 江陵洪濟洞)에 거주하던 후손들은 ‘經坊派’라 불렸으며, ‘경방파’ 중 일부가 16세기 중반 이후에는 강릉 城山 등지에 거주하다가 18세기 초·중반에는 襄陽으로 이거하였고 19세기 후반에는 인제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김충기씨가 가문의 역사 및 이거와 관련하여 구술한 것과 일치하고 있다.
또한 강릉김씨 족보를 통해서도 이들의 인제 이거는 19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35세손 김연태부터였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김충기씨의 구술에 따르면 증조부인 김연태가 공명첩을 사면서 가세가 기울어졌다고 하고 있어, 이것이 양양에서 인제로 이주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이 집안에는 김연태와 그의 부인 長興高氏, 아들인 김선경과 관련된 7건의 공명첩이 남아 있어 이러한 구술을 뒷받침하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김충기家 고문서의 현황과 특징
3. 인제 강릉김씨 가문의 내력
4. 강릉김씨의 麟蹄로의 이주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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