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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승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57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61 - 19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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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조선의 많은 사람들이 작은 힘이라도 보태 나라를 구하고자 나섰다. 국채보상운동은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이 땅의 모든 백성이 스스로 나선 구국운동이다. 종교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고에서는 충청도라는 지역 범위 안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종교계의 입장과 국채보상운동 참여 동향을 분석하였다. 종교 단위의 참여 동향은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지역 단위 분석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가장 적극적인 참여를 보인 것은 불교계이다. 1907년 3월 3일 불교연구회의 참여 결의 이후 사찰 승려들은 적극적으로 국채보상에 참여하였다. 특히 충남에서는 승려의 80%가 의연에 참여할 정도였다. 개신교는 교단에서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교회를 단위로 한 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 특히 단체의연에 나선 교회 대부분이 미감리교 공주 스테이션의 중점선교지역에 위치해 있어 종교의 확산이 교인들의 정치・사회적 각성에 기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교회 상당수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는 양상도 확인된다. 천주교와 천도교는 교단의 소극적 태도 때문인지 의연사례가 거의 없다. 다만 옥천성당의 홍신부가 5원을 의연한 것은 천주교회 내부에서도 국채보상에 대한 열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국채보상운동은 ‘의연금 납부’라는 동일한 행위로 표현되었지만 그 안에 다양한 정치・사회적 인식과 의도가 담겨 있다. 본고에서는 충청지역에 국한하여 서술하였지만, 종교계를 포함한 계층 단위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동향은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던 다양한 계층에 주목한다면 ‘전민족적 구국계몽운동’이라는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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