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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봉곤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52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335 - 377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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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과 호남사이에는 18,9세기 경 진주-하동-구례-곡성을 잇는 섬진강 유역의 인구와 경제력의 성장으로 많은 사족들이 성장하였고, 서로 간에 자주 왕래하였다. 이러한 교류 결과 영남지역에 기정진의 문인들이 다수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당시까지 영남 일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16세기 중엽의 남명 조식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선양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노사학파에서는 시비분별을 통하여 외적인 사특함을 막고, 경을 통해 시종여일 천리를 마음속에 보존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경을 통해 심을 활성화시키려는 조식의 경 사상에 깊이 경도되었던 것이다. 이에 노사학파인 정재규, 최숙민, 김현옥 등은 허유가 지은 「신명사도명혹문(神明舍圖銘或問)」에 대해 신명사도명의 위치나 내용에 대해 검토하고 남명의 사상이 경의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정재규는 ‘국군사사직(國君死社稷: 임금은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한다)’에 ‘한적불양립(漢賊不兩立: 한 나라의 역적과는 양립할 수 없다)’을 추가하자고 하여 위정척사(衛正斥邪)에 대한 강한 신념을 토로하였고, 최숙민은 신명사도의 전체적인 면에서 심의 주리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김현옥은 조식의 경의 사상이 황제-여상-주자-남명으로 도통을 계승한 것이며, 신명사도가 선천도나 태극도와 동일한 비중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사론(士論)이 쇠미해지고 구차스러워진 것은 신명사도의 국군사사직의 뜻이 강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조식이 ‘국군사사직(國君死社稷: 임금은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한다)’을 기록한 이유가 일신(一身)의 사직에 죽지 않은 자를 위하여 경계한 것이라고까지 하였다. 이러한 조식의 사상은 노사학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최숙민은 남명의 학문자세를 본받아 뜻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심(心)을 심성정(心性情) 일리(一理)로 보는 견해를 발전시켰다. 이는 심군(心君)이 경을 통해 성정을 주재한다는 신명사도의 논리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재규는 심은 주재하고 상정(常定)하는 것으로서 하늘로 말하면 상제이며 사람에게는 심(心)이라고 하여 조식과 같이 심의 주재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영남지역 노사학파에서는 심을 주재적 측면에서 리(理)로 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조식의 경의사상과 출처의리를 높이 받들었던 노사학파에서는 허목의 덕산비보다는 송시열의 남명신도비가 남명의 기절(氣節)이나 도학을 잘 드러내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남명의 ‘한적불양립’과 ‘국군사사직’을 중시하였던 영남지역 노사학파에서는 조선조말 조선조말 개화파와 일본의 침략에 반발하여 전개된 위정척사운동과 의병운동에 적극 가담하였으며, 일제 치하에서도 도학과 나라의 혼을 지키자는 운동을 지리산 일대에서 강인하게 전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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