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정재 (국립문화재연구소) 최문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중부고고학회 고고학 고고학 제16권 제3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5 - 38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1980년대부터 지속되어온 월성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월성 성벽, 중앙건물지, 월성해자 조사 성과를 분석하여 월성의 시기별 변천과정을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월성 일대는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수혈주거지와 굴립주건물지,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적심건물지 등 오랜 기간 다양한 생활의 흔적이 확인된다. 월성 성벽조사는 기저부 성토층 → 1차 성토층 → 2차 성토층 → 피복의 순으로 4단계 성벽 성토 공정이 확인되며, 5세기에 축조하여 6세기에 개축된 것으로 파악된다. 중앙건물지는 층위조사를 통해 표토층-통일신라시대 문화층-통일신라시대 유구 조성층-삼국시대 성토층-삼국시대 문화층-기반층의 순으로 퇴적양상이 확인되며, 4세기부터 신라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파악된다. 월성해자는 5세기대에 수혈해자를 축조하여 사용하다 7세기 후반에 석축해자로 변화하여 9세기 이후까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통해 기존 연구 성과를 토대로 월성 및 주변 건물지의 시기별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월성 일대는 4세기대 수혈주거지로 구성된 취락이 형성되어 존재하였고, 5세기대 월성 내부를 성토하여 대지를 조성하고 방어시설인 성벽과 수혈해자를 축조하여 월성이 왕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7세기 후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에 따라 관청시설 및 왕궁의 영역 확장 필요성에 의해 월성 북편에 대규모 건축행위와 월지 조성과 더불어 석축해자를 축조하여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본고에서는 현재까지 조사된 월성과 주변지역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여 5세기대 월성이 왕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변화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