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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준형 (해군사관학교)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1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5 - 24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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陝西~河北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詩經』 韓奕篇의 追[濊]․貊을 漢代 이후 문헌에 보이는 요령․길림지역의 예․맥과 같은 실체로 보는 입장에서는 예․맥의 이동에 의한 고조선의 성립을 주장한다. 반면에 맥을 북방민족의 범칭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고구려 등장 이전 맥이라는 실체는 없었던 것으로 본다. 전자는 이동의 흔적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呂氏春秋』 恃君覽篇의 “非濱之東 夷穢之鄕”에서 ‘非濱’은 ‘北濱’이 아니라 ‘渭濱’의 誤記이다. ‘非濱之東’은 위수가의 동쪽으로 東夷가 거주하던 지역이다. 사료의 시점도 전국시기[저술시기]가 아닌 서주시기이다. 예는 선진시기 동이가 거주하였던 하북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었다. 이 예는 요령․길림지역에 거주하였던 예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 따라서 고조선예족설은 성립되기 어렵다. 『管子』 小匡篇의 穢貉은 선진문헌에서 예와 맥이 연칭되는 유일한 사례이다. 『관자』가 전국시기 이후에 재편집되는 과정에서 제환공의 업적을 과장하기 위해 북벌 대상에 예맥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후대의 윤색․보입이다. 이러한 윤색․보입도 독자가 당대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끔 사실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런 사실을 통해 기인 기원전 7세기 중반 연칭으로서 예맥이라는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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