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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송일훈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최홍만 (한세대학교)
저널정보
대구과학대학교 국방안보연구소 사회융합연구 사회융합연구 제4권 제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5 - 50 (1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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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유술의 기원과 군사무예로서 무형유산으로서 가치에 대하여 거시적 관점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다음과 같이 결론 도출을 얻었다. 첫째, 조선군사는 일본 왜적과 7년 전쟁을 하면서 갑주를 착용하고 칼과 조총을 가지고 있는 왜적에게 대처하는 백병전 살수로서, 반드시 먼저 유도를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하고(柔道制之使) ‘부드러운 것이 강한 자를 승리할 수 있다(柔能勝强者)’고 《조선왕조선조실록》에서 “유도” 어원과 신체기법이 묘사되었다. 둘째, 임진왜란 39년 이후 일본으로 유도가 전래되었다는 것은 1637년 진신류 유도가 탄생되어 무술계는 새로운 전쟁 신체기법들이 성립되었다. 셋째, 대한제국 황립 무관학교는 1895년(고종 32) 4월 신식 군대인 훈련대가 편성되면서, 5월 이들을 훈련시키고 지휘할 초급 무관을 양성하기 위한 훈련대 사관 양성소가 설치되었다. 특히 일본 외무성 기록에는 1905년 김좌진 장군 조선육군무관학교 시절 주특기는 유도이며 조선무관들은 무술학에서 조선유술를 구국일환으로서 하였다. 넷째, 조선유술부의 시작은 상무적 기풍인 구국의 일환으로 고종황제와 월남 이상재선생 100명 장사(무사) 그리고 고종황제무관학교 출신인 류근수와 나수영에 의해서 조선유술부가 시작되었다. 특히 나수영의 조선유술인 천풍해세류이었으며 YMCA 유술부에서 최초의 유단자 김홍식이다. 즉 일본 강도관의 유도가 조선에 도입되기 이전에 조선유술이었을 뿐만 아니라 1914년도 체육부 보고서에서의 유술이라는 명칭이 존재하였다. 이상과 같이 종합해 볼 때, 조선유술을 통한 선조들의 숭고한 상무정신이었으며 우리는 이러한 상무정신과 무형의 문화유산 보존하고 계승 발전 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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